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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3. 2015

#75 푸들 기르는 분들만 보세요

핵 폭풍 귀여움 주의 요망

어제에 이어서 우리 푸들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얼마 전에 꽤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신문에 났다. 미국 타임지에서 조사한 것인데,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보수 성향일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진보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면 개나 고양이를 둘 다 싫어하는 사람은 무정부주의자냐' 하는 생각도 들고 '개도 좋고 고양이도 좋으면 중도 진영이냐' 같은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독자 의견을 보내면 타임지 기자들이 후속 기사라도 좀 내주려나? 


아무튼 신문 기사의 해석은 이랬다. '충성, 복종'의 상징인 개는 아무래도 보수의 가치와 어울리고 '독립, 자유'의 성향이 강한 고양이는 진보와 맞닿은 점이 많다고. 무려 20만 명이 넘는 독자들로부터 얻은 결과라고 하니 '별 웃긴 소리 다 듣겠군' 하고 콧방귀를 흥 뀔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법정에 들어가는 미국의 변호사들은 넥타이나 구두의 상태만 보고도 자기 의뢰인에게 호의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들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을 생각하면 개-고양이 연구도 '호오, 과연' 하고 고개가 끄덕여질 법도 하다. 


기사를 읽으며 등 뒤에 앉아있는 푸들을 보았다. 화보를 찍는 그리스 여신처럼 베개에 처억 하니 어깨를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푸들이다. 요놈 봐라. "푸들, 너가 충직해?" 푸들은 까만 두 눈과 동전 같은 코를 데굴데굴 굴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녀석이 보수의 아이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푸들은 나름의 확고한 매력이 있다.

이해와 상상을 돕기 위해 대략의 신상 명세를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1. 이름


방울이 (동물 병원에 등록한 이름, 아빠, 엄마가 부른다)
푸들 (내가 부르는 이름. "우리 푸들의 이름은 '푸들'이야."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까르르 웃는다)
강아지 (내가 이따금 부르는 이름, 사용례 - '이놈의 강아지가!!!!(버럭 모드)'
승리 (이전 주인이 부르던 이름)
푸들은 네 이름 모두 자기를 지칭하는 것인 줄 안다. 아무거나 불러도 달려옴. 


2. 품종


애프리 푸들 

털이 갈색이지만 많이 밝아서, 사실 금색에 가깝다. 

아이폰도 골드가 있는데 골드 푸들은 없나.


3. 나이


2008년 11월 생으로 추정. 벌써 만 6세가 넘었다.

개 나이를 사람으로 환산하려면 7을 곱해야 한다고.

동안이라 그렇지 어금지금 40대 후반.

이미 중년 푸들이다. 


4. 체중, 신장


푸들 중에서도 꽤 작은 편. 
5년째 꾸준히 2.8kg다. 

다이어트 안 해도 체중이 유지되니 얼마나 좋을꼬. 


5. 좋아하는 것


개천 

'개천'이라 말하면 문자 그대로 '자다가도 눈이 번쩍.' 

집에서 기르다 보니 산책에 대한 무한한 갈증이 있는 듯 싶다.

끈 

개천에 나갈 때는 끈에 묶어서 나가기 때문에, '끈'이라는 말도  알아듣는다.

대뇌피질에 접수되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핵심 단어.


참치, 스팸 

나트륨이 다량 있기 때문에 먹이면 안되는데, 하여간 캔 뜯는 소리만 나면 세상없어도 달려온다.


 

"공" 하고 말하면 공을 찾아 물고 온다. 

공은 항상 집안 구석 어딘가에 돌아다니기 때문에.


6. 싫어하는 것


치카치카 

기름진 것을 먹고 나면 양치를 시키는데, "치카치카할까?"라고 말만 해도 식탁 밑으로 숨음


목욕

목욕이 끝나고 나면 온 집안을 두다다다 뛰어다니면서 이불과 베개를 박박 긁음. 

나름의 스트레스 표현인 듯 싶다. 

6년 넘게 목욕을 시켰는데 아직도 싫어하다니.


잠 잘 때 깨우기 

우리 푸들은 잠이 많다. 아마 주인 닮아서일 게다.

잠잘 때 만지작 거리면 '끄으으응' 하고 긴 신음소리를 뽑아낸다. 

푸들의 확고한 매력 첫 번째.

낮은 자존감. 


푸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안돼"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참치나 스팸, 제육볶음은 짜서 안되고, 한겨울의 산책은 추워서 안된다. 황사 때문에 창문을 열어서는 안되고, 밤에는 시끄럽기 때문에 '삑삑이 놀이'를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아무리 "안  돼"라고 말해도 우리 푸들은 삐치는 법이 없다. 비록 짐승이라도 서너 번 강하게  "안돼"라고 말하면 토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푸들은 절대로 지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No라고 해도, 언제나 나는 Yes일  뿐'이라고 다짐하는 영업사원 같다. 


예를 들어 보자. 온 가족이 식탁에서 구운 스팸을 반찬 삼아 밥을 먹고 있다. 스팸 구운 냄새는 푸들의 위시리스트 BEST 3쯤 된다. 푸들은 껑충껑충 점프를 하며 나를 조른다.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푸들 안돼" 


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우에게 점프한다. 아우도 말한다. 

"푸들 안돼" 


그럼 다시 식탁 아래로 쪼르르 움직여 엄마에게 간다. 이렇게 식사 시간 내내 온 가족의 발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한다. 아무리 '안  돼'라고 해도 초지일관 같은 표정으로 뛰고 있는 푸들을 보면 스스르 웃음이 난다. 


"어이구 어이구 우리 푸들 불쌍하기도 하지." 

결국 우리는 측은지심에 무너지고 만다. 

푸들의 확고한 매력 두 번째.

주인을 기다리는 바람직한 자세. 


푸들은 가족들의 귀가 시간을 알고 있다. 아침에 가족들이 일터나 학교로 가면 푸들은 하루 종일 늘어져 잔다. 이따금 타박타박 걸어나와 사료 몇 알을 사각사각 깨물어 먹는 것 말고는 온종일 잠이다. 그러다 저녁 무렵, 해가 슬슬 기울면 푸들은 현관으로 나온다. 그리고 현관문 신발 앞에 바르게 앉아 문만 바라본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뚫어져라 바라보는 게 푸들이란 견종의 특성이라 들었다. 정말이다. 참선하는 도인처럼 푸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1층 저 멀리서 타박타박 발소리가 들리면 푸들은 몸을 일으키고 귀를 쫑긋한다. 가족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중이다. 


'아빠다!' 혹은 '큰  형이다!'라고 판단되면 후다다닥 달려나가 현관문에 매달리고, 다른 집 사람이면 다시 엉덩이를 내린다. 그렇게 온 가족이 모두 귀가할 때까지 푸들은 문 앞을 지킨다. 충성스러운 푸들 녀석. 


그런데 이 충성스러움이 배가되는 것은 누군가 한밤 중에 귀가할 때다. 밤이 깊어지면 푸들도 이불을 파고 든다. 하지만 잠을 자면서도 푸들의 1순위는 가족의 귀가.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띵- 띵- 소리가 나면, 푸들은 '팟' 하고 일어나 비척비척 걸어온다. 


새벽 세시고 네시고 한결같다. 문을 여는 소리에 기어 나오는 건 절반은 푸들이요, 절반은 잠. 마치 '주인님을 기다려야  해'라고 명령하는 푸들의 무의식이 잠에 빠진 푸들의 2.8kg짜리 몸을 이끌고 나오는 것 같다. 의무감이 무의식에서도 작용하니 이 얼마나 귀여운 푸들인가. 

푸들의 확고한 매력 세 번째.

잘 먹는 푸들이 때깔도 곱다. 


십 몇 년 전,  그때만 해도 우리 동네에는 강아지를 집 안에서 기르는 친구들이 드물었다. 어쩌다 드문드문 강아지를 기르는 아이들은 '개도 사람처럼 베개를 베고 잔다' 거나 '개도 라면 먹을 줄 안다' 같은 말들을 신기한 듯 떠들어 대었다. 


불과 십 몇 년 사이. 노트북과 스마트 폰의 증가 속도와 경쟁이라도 하듯 애완 동물의 수도 늘었다. 동물이라곤 사람 넷 밖에 없던 우리 집에도, 푸들 1 마리, 문조 2 마리, 금붕어 3 마리, 구피 6 마리, 이름을 알 수 없는 열대어 1 마리가  추가되었다. 


푸들을 길러본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참 다양하다. 아니, '푸들은 이런 것도 먹을 수  있어'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푸들이 안 먹는 것도  있네?'로 다가가는 편이 빠르다. 라면, 참치, 어묵, 우유. 사람이 먹는 것은 거의 다 먹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입이 참 long 한 푸들이다. 


그중 유달리 귀여운 사실 두 가지. 

식빵과 사과. 


푸들은 사과를 좋아한다. 날 무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아삭 거리는 식감을 즐기는 것 같다(인터넷에서 보았는데 날 양배추로 좋아한단다). 특이한 사실은, 사과는 먹되 사과 껍질은 먹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 아느냐고? 푸들에게 사과 조각을 주면 어금니(가 있어야 할 부분의 이빨)로 아삭아삭 베어 물고는 사과 껍질을 '퉤' 하고 뱉는다. 신기하다. 사람처럼 앞니로 사과 껍질을 벗기는 것도 아닌데, 속살은 주워 먹고 껍질은 뱉어놓는다. 


식빵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푸들에게 식빵의 속살, 즉 보드랗고 새햐얀 부분을 떼어주면  냠냠하고 맛있게 먹는다. 우유 식빵이든 옥수수 식빵이든 똑같다. 식빵이란 식빵은 다 좋아한다. 그런데 식빵의 바깥 부분, 즉 갈색으로 구워진 부분을 섞어주면 코를 대어 '킁킁' 냄새를 맡고는 '흥' 하고 콧김을 내뿜는다. 불쾌하단 뜻이다. 


왜 그럴까. 탄 내가 싫어서일까? 삼겹살 탄 부분은 잘도 먹는다. 딱딱해서 그럴까? 딱딱한 것으로 치면 호두나 아몬드도 잘 깨물어 먹는다. 유독 식빵 껍데기만 늘 '흥' 하고 퇴짜다. 누가 보면 전생에 바게트 빵 껍질만 먹다 죽은 프랑스 귀신인 줄 알겠다.  

아무렴 어떠랴. 푸들은 푸들인 것을. 비주얼이 귀여우니까 무슨 짓을 해도 이쁘다. 사과 껍질을 뱉어도, 빵 껍질만 거절해도 귀엽기 그지 없는 것이 푸들이다. 


개를 기르는 사람은 잘 알지만, 강아지도 꿈을 꾼다. 꿈을 꾸고 잠꼬대를 한다. 이따금 잠을 자다가 네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뻐끔뻐끔 금붕어처럼 짖는다. 꿈을 꾸는 중이다. 


사람은 일상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버무려  꿈속에서 내놓는다. 푸들의 뇌도 포유류의 그것이니 우리와 크게 다르진 않을 터. 일상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저 작은 머리 안에서 꼬물꼬물 비벼져, 푸들의 꿈이 될 것이다. 푸들은 무엇을 보길래 네 발을 움찔거릴까.  꿈속에서도 주인님이 귀가하기를 기다리지 않을까. 참치 캔과 스팸에 매달리고, 사과와 식빵에 껑충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푸들이 한없이 안쓰럽다. 


저 쪼그만 녀석이 꿈에서도 우리를 떠올리고 있다니. 


푸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으니 스무 살까지 오래만 살자.

형아가 이번 주말에도 개천 데려가 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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