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고 쓸 글이 없을 때 '세 가지'를 꼽아보자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는 '세 가지'를 꼽는 일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말을 하든, 글을 쓰든, 일기를 끄적거리든 간에 조금만 방심하면 '세 가지'의 버릇이 고개를 내민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밤 11시, 야식을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으면 어느새 머릿속에서 "지금 너구리를 끓여도 되는 세 가지 이유"를 대고 있다. 첫째, 오늘은 저녁 식사를 삼각김밥으로 때웠다. 둘째, 앞으로 두세 시간 더 일을 할 예정이다. 셋째, 부엌에 큼지막한 다시마와 통통한 표고버섯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행동 개시'를 외치는 스타트 라인의 총소리와 같다. '~ 버섯이 있다' 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냄비에 물을 올린다.
아무튼 늘 '세 가지'를 챙기다 보니, '세 가지 이유' 정도는 무슨 일에 대해서건 끄집어 낼 수 있다는 소박한 자신감 같은 것도 생겼다.
내가 '세 가지'에 익숙하게 된 이유 세 가지는 이렇다.
첫째, 숫자 3의 마력 때문이다.
3이란 숫자에는 '완전함'과 '안정감'이 고루 깃들어 있다. 이는 양의 동서를 막론하며 시간의 고금을 차치하고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다.
중국 2500년 역사에서 제일 흥미진진한 시대는 위, 촉, 오 삼국시대이고, 삼국시대의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다. 단군 신화에는 환인, 환웅, 단군이 나오고 그리스 신화의 주신은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다. 불교의 삼세불은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이고 가톨릭 신자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을 올린다.
과학실에서는 삼발이를 쓰고, 처음 타는 자전거는 세발자전거이며, 내기를 할 때는 삼세판을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숫자 3의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이상하게 '세 가지'는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둘째, 논술 시험을 준비하던 습관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논술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 번은 39점, 한 번은 41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100점 만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아이쿠, 큰 일이다' 싶어서 부지런히 혼자서 2년 간 논술 답안지를 끄적거렸다.
논술의 기본은 근거 제시. 하나를 대면 겨우 댄 것 같고, 두 개를 대면 약간 부족하며, 네 개를 대면 수다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항상 세 가지 이유를 대려고 연습하다 보니 버릇이 되어 버렸다.
셋째, 법서를 뒤적거렸기 때문이다.
법 공부를 하다 보면 학설 대립이 끊임없이 나온다. 그 많은 학설들을 다 외워야 실제 시험에서 답안지에 써 넣을 수 있는데,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그것을 다 외우나.
요령이 있다. 학설 대립의 큰 틀은 세 가지다. 찬성, 반대, 중립. 조금 더 법학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로 바꾸면 이렇다. '긍정설, 부정설, 절충설.' 혹은 '주관설, 객관설, 절충설.' 물론, 대립이 심한 부분에는 세 가지 외에도 '주관적 객관설'이니 '객관적 주관설'이니, 날짐승도 아니요 들짐승도 아닌데 박쥐마저도 아닌 신기한 학설 이름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인문계에서 논리학을 제외하고 가장 논리적(이지 않을까)인 과목을 전공하다 보니 어느새 '세 가지'를 대는 습관이 단단해졌다.
전가의 보도처럼 일단 '세 가지'를 활용하면 제법 좋은 점이 있다. '세 가지'의 세 가지 장점이다.
첫째, '흠, 이 사람 스마트하군' 하는 인상(내지 착각)을 줄 수 있다.
스피치를 가르치는 책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조언이 '번호를 붙여 말하라'다. 별 말이 아닌데도 첫째, 둘째, 셋째를 넣어 이야기하면 구조적인 사고를 하는 논리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상사에게 기획안을 내놓을 때나, 지인의 보험 권유를 거절할 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이라고 말을 해보라.
상대방은 '셋째'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설득당했을 수도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너구리 예시를 떠올려 보자. 큼지막한 다시마와 통통한 표고버섯이 있다니. 이 얼마나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설득력인가.
둘째, 주장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
말의 기본은 서론, 본론, 결론이다. 그리고 본론의 정석은 세 덩어리다. 서론과 본론과 결론이 1:3:1로 이루어져야 황금 비율이다. 먹기 좋은 떡이 보기도 좋다는 속담은 비단 떡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글을 폈을 때 문단의 비율이 아름답지 않은 글은 대개 내용도 엉망이다. 구성이 탄탄하지 않은 주장은 대부분 주장 자체도 부실하다.
'꼴'이 좋아야 '꿈'도 먹힌다. 쓸만한 '탈'을 갖는 지름길은 적당한 '틀'을 구하는 것이다.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는 '세 가지' 틀이 쓸만하다.
셋째, 분량을 채울 수 있다.
예전에 어느 대학의 입시 논술 고사를 총 지휘한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교수님은 대치동과 노량진의 논술 대비 단기 특강이 실제 논술 시험에서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출제 위원장의 입장에서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배경지식 특강도 쓸데 없고, 예상 문제 풀이도 백해무익하다면, 논술 대비는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강의를 듣던 청중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수님이 내놓은 대안은 바로 '구조의 활용.' 비유/ 예시/ 대조/ 분류 등의 사고 도구를 사용하라. 그러면 어떤 문제든 85점은 먹고 들어간다. 적어도 분량을 못 채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세 가지'의 필살기도 마찬가지. 일단 '세 가지 이유가 있다'라고 쓰면, 마치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린 것과 같아 대충 집의 모양새는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세 가지'의 보검은 아무 때나 휘둘러도 되는 것인가. 아니다. '세 가지'를 경솔하게 사용할 경우, 중대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세 가지'의 비기(祕器) 시전(始展)에 신중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다.
첫째, 연인 혹은 부부 관계에서 다툴 때 '세 가지'의 비기를 시전 하면 큰일 난다.
예전에 어느 강연에서 '검사 남편이 꼴보기 싫어질 때'라는 다소 자극적인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다. 검사 아내 되는 분의 하소연인 셈이다. 검사라는 직업이 또 직업인지라 부부 싸움을 하다 보면 직업 습관이 나온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지금 당신이 나한테 화를 내고 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이야기해봐."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요, 폭우 쏟아지는데 쓰나미가 덮치는 격이다. 칼은 양쪽에 날이 있다. 베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베는 사람도 쉽게 다친다.
둘째, '세 가지'를 대다가 '네 가지' 없는 사람으로 찍힌다.
'세 가지' 씩이나 이유를 댄다 함은, '나는 물러날 생각이 없소'라고 통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아, 이것 봐라. 내 말이 이렇게 옳지 않으냐' 하는 논리적 우월감을 어느 정도는 보여주는 셈이다. 화나면 차가워지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제 말씀대로 하셔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고 접근하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라며 상대방은 당신에게 질릴 수도 있다. 상대와 상황을 잘 보고 말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지금 당신이 '너구리를 끓일까 말까'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면 비기의 시전 전에 한 번 더 고민하라.
셋째, 일단 '세 가지'가 있다고 질러버리고 나면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바로, '둘째' 다음에 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야, 오늘 내가 끝내주게 맛난 거 사줄게"라고 큰 소리 친 후에 분식집에 들어가는 남자처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준다"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호언 장담한 후에 기 죽어서 살아가는 남편처럼, 괜히 '세 가지'라는 용의 머리를 꺼냈다가 할 말이 없어 뱀 꼬리처럼 스스륵 사라져야 할 지도 모른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난다. 귀이개로 땅굴을 파듯 힘겹게 분량을 채워야 한다. 나도 종종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를 지르는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글 쓰는 내내 머리를 쥐어뜯곤 한다.
이를테면, 지금 이 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