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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3. 2015

#78 진로 선택을 위한 세 가지 질문

나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길은 스스로 드러난다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나는 내게 맞는 길을 가고 있는가. 

진로를 선택하기 위해 던져보아야 할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열정이 없는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경쟁이 치열한 작금의 세상에서 열정이 없는 사람은, 성공은 차치하고 현상유지도 쉽지 않다. 프랭클린이 말하길 '인생은 시간 그 자체'라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대상은 다름 아닌 일이다. 


그러므좋아하지 않는 일을 택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 인생을 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내가 잘 하는 일인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재능은 거의 없다. 하지만 요구되는 노력의 크기는 장담할 수 없다. 그 벽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우리는 재능의 담벼락을 넘기 전에 지칠 수도 있다. 보다 쉽게, 보다 빨리 성공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인지상정. 인생에는 지름길이 있고 그 길은 사람마다 다르다. 지름길을 원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셋째,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일인가. 


다행히 세상은 점점, 다양한 재능에 대해 보상을 주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당구 마니아나 컴퓨터 게임광도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이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 직업을 구할 수 없거나 직업을 직접 만들어 낼 수 없는 분야를 '일'로 택하는 사람은 얇은 지갑과 텅 빈 냉장고의 서글픔을 감내해야 할 지도 모른다. 

<스무 살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나는 저 책을 군대에서 읽었다. 휴가를 나왔고, 다리미로 줄을 잡은 군복을 입고 있었고, 버스를 기다리며 기웃거리던 서점에서 책을 샀다. 내용이 좋아서 밑줄을 치고, 요약을 하고, 요약한 내용을 다시 프린트해서 군대에서 쓰던 노트에 딱풀로 붙여두었다. 지금도 책꽂이에 가면 그 스프링 노트가 꽂혀있다. 


티나 실리그는 말하길, 위의 세 가지 중 어느 한 질문도 버려서는 안된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것이고, 잘하는 일이 아니라면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직업을 구할 수 없다면 항상 힘들게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 가지 질문의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동그라미가 겹쳐지는 교집합을 찾아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누구나 주워가도록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동전이 아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짐 콜린스의 책에도 나온다. 

<Good to Great>와 <Built to Last>. 


짐 콜린스는 3M, 디즈니, 월마트 같은 대단한 기업들을 오랜 시간 연구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평범한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이 되었는지 그 비밀을 파고들었다. 


사람이 진로 선택에 신중해야 하듯,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어가면 '쯧쯧쯧, 그 친구 그렇게 될 줄 몰랐는데' 하고 혀를 차는 일이 종종 생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신사업의 잘못된 선택으로 튼튼하던 우량기업이 무너진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기업은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까닭에, 기업의 생주괴멸(生住壞滅)은 어떤 면에서 사람 개개인의 그것보다 훨씬 냉엄하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사업을 선택하느냐. 어떤 기준으로 진로를 택할 때, 상존하는 위기의 높은 파도를 넘을 수 있느냐. 짐 콜린스는 세 가지 기준에 기대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핵심 가치에 맞는 사업인가. 


핵심 가치는 기업의 사훈(社訓)이나 비전, 미션에 녹아 있는 기업의 DNA다. 이를테면, 나이키의 '승리', 애플의 '혁신', 3M의 '창의' 같은 것. 핵심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은 그저 '이익 창출'의 1차적 목적을 위한 비즈니스일 뿐이다. 


둘째, 핵심 역량과 일치하는 사업인가. 


어느 기업이든 '가장 잘 하는 일'이 있다. R&D에 탁월한 기업도 있고, 영업력이 막강한 기업도 있다. 고객을 즐겁게 하는 일에 최고인 기업이 있는가 하면, 실수 없는 꼼꼼한 공정 관리가 압도적인 기업도 있다. 


셋째, 시장성이 있는 사업인가. 


기술 변화와 경제 동향에 따라 시장은 신대륙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아틀란티스처럼 꺼지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길, 성장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늘로 솟는 로켓의 머리에 앉아 가는 거라고 한다. 잘 나가는 프로젝트에 속해야 빨리 크고, 고속 승진하는 사람 밑에 들어가야 빨리 올라가고, 우승하는 팀에 일원이 되어야 몸값이 오른다. 기업도 마찬가지. 성장세인 시장에 진입하면, 숟가락만 얹어도 덩치가 불어난다.

핵심 가치.

핵심 역량. 

시장성. 


기업이 던져야 하는 세 가지 질문을 가만히 보자. 진로 선택을 위한 세 가지 질문은 개인과 기업이 같다. 


좋아하는 일인가 = 기업의 정신과 부합하는가.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 핵심 역량과 일치하는가. 
직업을 구할 수 있는가 = 시장성이 있는 사업인가.


"성공의 우선 조건은 하나의 길을 선택해 그 길에서 싸우며, 모든 개선점을 받아들이고, 최고의 무기를 개발하고, 그 길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것이다." - 앤드류 카네기 


하나의 길을 골라 거기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질은 양이 만든다고 했으니, 그 길에서 양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말문은 거기서 막힌다. 호수 위 얇은 얼음에 올라선 사람처럼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할 수 있을 법한 일도 많은데, 당장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는 바를 활용하기로 했다. 진로를 택하는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지난 주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나 혼자서 워크숍을 했다. 


워크숍 주제는 '무슨 작업을 할 것인가'

나는 이런 방법을 썼다.

 

비유컨대 내가 셰프라고 해보자. '어떤 요리를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 중인 셰프다. 이 세상의 모든 요리 중에 하나를 골라 거기에 능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문제는 무슨 요리를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 이런 요리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저런 요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시간과 재료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요리 저런 요리에 모두 손을 대다 보면 "완전 예술이다!" 하고 감탄할 만한 끝내주는 요리는 만들 수 없다. 결국 하나의 요리를 택해, 그 길에서 싸우며, 그 요리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선, 내가 아는 모든 요리를 나열했다. 이런 식이다. 한정식, 짜장면, 탕수육, 커피, 초밥, 햄버거 등등. 그런 다음 나열된 요리를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었다. 이를테면 한식, 중식, 일식, 제빵 등등. 이제 표를 만들었다. 요리의 카테고리를 세로에 쓰고, 던져야 할 질문들을 세로에 썼다. 


1. 좋아하는 일인가(이 요리를 즐겨서 먹는가/ 즐겨서 만드는가)
2. 잘하는 일인가(이 요리에 자신이 있는가/ 많이 만들어 보았는가)
3. 직업을 구할 수 있는가(이 요리로 음식점을 낼 수 있는가/ 돈을 벌 수 있는가)

4. 그리고 추가로 고려할만한 몇 가지 물음을 더 적었다. "빨리 성공할 수 있는가", "성공했다 가정할 때 자부심이 느껴지는가" 등등. 


각각의 질문에 대해 5점 척도로 점수를 매겼다. '아주 그렇다'는 5점. '전혀 그렇지 않다'는 1점. 그렇게 해서 한식, 중식, 일식, 제빵 각각에 대한 총점을 구했다. 총점에 따라 등급도 나누었다. S, A, B, C.


이렇게 하니 수많은 요리 중에서 어느 것에 집중해야  할지, 답이 나왔다. 


끄적거린 표에 따르면 S등급과 A등급을 받은 요리는 그나마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고, 성공 가능성도 높은 요리다. B나 C등급을 받은 요리는 아무래도 성공하기 조금 어렵다. 그러므로 일단은 S와 A등급의 요리 위주로 부지런히 만들고, 내놓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만들어야 할 요리다. 


'그렇게 스스로 매겨 본 점수가 얼마나 정확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질문지니 5점 척도니 가중치니, 모두 나 혼자 임의적으로 던져서 결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런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예전에 기획 업무를 오래 하신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때 몸을 담았던 직장에서 외부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다 했다. 회사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컨설팅이다. 비싼 돈을 받고 온 컨설턴트가 무슨 이야기를 해줄 것인지 기대가 높았다. 공개되지 않은 극비의 정보를 가지고, 시장의 트렌드를 정확히 설명해 준 후, 기업의 재무제표를 매의 눈으로 노려보다가, "땅땅땅,  결정되었습니다. 앞으로 당신들은 이 길로 나가셔야 합니다" 하고 선언해줄 거라고 예상했다. 


전혀 아니었다. 값비싼 컨설턴트가 6개월의 기간 동안 한 일은 그저 '질문  던지기'였다. 경영진을 모아놓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경영진은 컨설턴트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데이터를 뒤졌다. 그렇게 데이터를 헤집는 가운데, 조금씩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들이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이 명확해지고, 문제점과 해결책이 밝혀졌다. 


길은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밑바닥에 글씨가 쓰여있는 항아리가 하나 있다. 그 글씨가 바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진로다. 그런데 항아리 안에는 흙탕물이 담겨있어서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답답한 사람들은 이리저리 방황한다. 항아리를 잡고 흔들어댄다. 그럴수록 물은 탁해지고, 표면은 일렁거리기 때문에 답은 점점 멀어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것.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항아리를 햇볕이 잘 드는 좋은 위치에 올려두는 것. 스스로 표면이 잔잔해지고 부유물이 가라앉아, 밑바닥의 글씨가 보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갈등은 대화로 해소한다. 진로의 방황은 내면의 갈등이다. 대화가 필요한 것은 내면의 갈등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잘하는 일인가, 좋아하는 일인가, 성공할 수 있는 일인가. 표를 만든 것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과정이었다. 적절한 질문을 던져두고, 올바른 답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1점과 5점을 적고, SUM 함수를 써서 총점을 구하는 동안, 욕심은 고개를 숙이고 조급함은 신발끈을 풀었다. 


'이것과 이것부터 해야 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어.' 

가슴은 침묵으로 동의했다.


우리가 설득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진로 선택을 위한 세 가지 질문은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쓸만한 도구인 셈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길. 우리는 평생 동안 우리 자신의 No.1 컨설턴트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어째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의 마음이 가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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