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Aug 13. 2015

#80 먼저 주고, 먼저 감사하고, 놀듯이 일하라

법륜 스님의 건강 관리

"꺽꺼거거거. 꺽꺼거거거." 


자동차 경적과 새벽 닭 우는 소리를 절반 씩 섞어 놓은 것 같은 알람 소리다. 핸드폰을 끄고 출근 준비를 한다. 아직 겨울은 가시지 않은 터라 창 밖이 어둡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피곤하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은 대개 몸이 무거운 편이지만 오늘은 특히 심하다. 지하철 맨 끝 칸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서도 잠을 자는 두루미마냥 고개를 점퍼에 파묻었다.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와서야 환승하는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고 다 먹은 옥수수처럼 빈 자리가 났다. 나는 기둥을 끌어안고 잠을 청한다. 


띵똥 띵똥. 


불광이라는 안내 멘트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엊그제 산을 다녀온 탓인가, 어제 결혼식 사회를 본 탓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은 넉넉히 잤다. 재충전을 위한 완벽한 휴식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특별히 일을 했거나 바쁜 주말은 아니었다. '너무 오랜만에 산을 밟아서 몸이 놀랬나' 게슴츠레 눈을 뜨고 생각했다. 두 다리가 삐그덕 삐그덕 낡아빠진 물레방아처럼 움직였다.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에 들어갔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에 들어갈 때까지 종종 유튜브의 음악을 듣는다. 아침 햇살에 음악을 들으면 잠이 깬다.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난다. 오늘처럼 몸이 무거운 날에는 더욱 필수다. 

검색창을 열어 위 아래를 노니는데, 문득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보였다. 


제목은 "스님의 건강관리". 


오호라.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법문이다. 알다시피 힐링멘토로 많은 사랑을 받는 법륜스님의 스케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빽빽하다. 하루 종일 강연에, 모임에, 일 처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길, 하루 두세 시간 남짓 수면을 취하는데 그나마 일정한 시간이 없다고 했다. 


하도 뵙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밤중이고, 이른 새벽이고 가릴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좋습니다. 다만 시간이 없으니 새벽 다섯 시는 어떠십니까." 이런 식인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법륜스님은 항상 유머가 넘치는 웃는 얼굴이다.


다이어트 비법은 살 뺀 사람에게 듣고 말 잘하는 비법은 김제동한테 들어야 하듯이, 건강 관리의 비결은 스님에게 들을 만했다. 내가 하루 두세 시간씩 일주일만 잤으면 벌써 응급실에서 링거를 달고 드러누웠을게다. 


질문자의 사연은 대강 이랬다. 집이 부산이고 직장이 목포다. 부산에서 목포까지 가는데 여섯 시간이 걸린다. 주말마다 집에 다녀오는데 이게 죽을 맛이다. 집에만 다녀오면 녹초가 되니 몸은 점점 망가지는 것 같고, 힘이 나지 않는다. 스님은 듣자 하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바쁘신데, 이렇게 표정이 좋으신 것을 보니 나름의 비결이 있으실 것 같다. 좀 가르쳐 달라. 


법륜스님은 웃으며 답했다. 


여기는 부산이지만 나는 조금 있다 청주로 가야 한다. 어제는 저기 무등산을 다녀왔다. 나도 전국을 왔다 갔다 하고, 당신도 목포-부산을 왔다 갔다 하는데, 나는 말짱하고 당신은 녹초가 된다고 한다. 그건 왜냐, 나는 돌아갈 집이 없는데 당신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목포를 가면서도 '아, 부산에 다시 가야 하는데' 생각하고, 부산을 가면서도 '아, 목포에 돌아갈 길이 먼데' 생각한다. 그러니 피곤할  수밖에. 당신도 나처럼 집을 없애라. 집을 없애 돌아갈 곳이 없으면 피곤할 일도 없다.

질문자는 당황했나 보다. 횡설수설했다. 물론 "아이고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넙죽 받아들일 수 있는 답이 아니다. 스님은 설명을 이었다. 


경전에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이 있다. '어느 자리에 가든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스님은 전국 각지를 돌며 '즉문즉설' 강연을 한다. 유명 연예인이 행사를 뛰듯, 팔도강산을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펄쩍펄쩍 옮겨가며 일정을 맞춘다. 어제는 광주, 오늘은 부산, 내일은 청주. 이런 일이 그저 일상이다. 우리들은 명절에 고향 집에 다녀오면 "어이구 피곤하다. 나 죽네 죽어" 하고 쓰러지는데, 스님은 거의 매일 명절 대이동 하듯 전국을 다니는 것이다. 그런 생활이 가능한 것은 온전히 마음가짐 때문이다. 수처작주의 마음 말이다. 


일터에서 우리는 '객'이 된다. 아침이 되면 일터로 나가 '객'이 되었다가,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주인'으로 쉰다. 지방 출장을 가는 사람은 이동 자체가 '일'이다. '돌아올 생각'을 하니 스트레스는 주행거리에 따라 쌓인다. '자신을 위한 일'을 하면서  피곤해하는 사람 없다. '의무감'으로 일을 할 때 피로가 온다. 업무 이야기를 하며  지루해하는 CEO는 없다. 회의 안건이 많다고 힘들어하는 CEO도 없다. 자신의 회사기 때문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주인이 되고자 하면 지치지 않는다고 스님은 말했다. 광주에 갈 때는 무등산을 구경해서 좋고, 승합차 안에서 식사를 하면 김밥 맛을 보아 좋다. '서울 우리 집'만 '내 집'으로 여기는 사람은, 지방을 가면 멀어서 피곤하고 외식을 하면 바깥 밥이라 불편하다. 그런 식으로 '객'이 되어 사는데 힘이 날 리가 없다. 대문만 나서면 인상을 찡그리고 피곤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것은 건강 관리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인이 될 수 있느냐. 주인처럼 행동하면 주인이 되고, 객처럼 행동하면 객이 된다. 우리 자신이 주인인지, 객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여기 주인과 객을 구분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주인은 돈을 주고, 객은 돈을 받는다. 


여러 명의 농부들이 퇴비 냄새가 풀풀 나는 논에서 종일 모내기를 하고 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일꾼이냐. 하루 일과가 끝나고 돈을 보면 된다. 돈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다. 일당을 받는 사람이 일꾼이다. 


주인과 일꾼 중에서 누가 즐겁게 일을 할까. 당연히 주인이다. 주인은 한 포기라도 더 심어야 좋아하고, 일꾼은 한 번 이라도 더 쉬어야 좋아한다. '하루의 일과는 퇴근을, 일주일의 일과는 주말을, 한 달의 일과는 월급 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일꾼이다. 


둘째, 주인은 감사하고, 객은 감사를 받는다. 


결혼식장을 보자.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쪽은 신랑 신부다. 급여명세서를 보자. "당신의 노고에 감사 드리"는 것은 회사다. 주도권을 쥔 사람이 먼저 감사한다. 관계에 적극적인 사람이 먼저 감사한다. 100세 장수 기인으로 알려진 내과의사 시오야 노부오 옹은 인생의 비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자꾸만 감사할 일이 생긴다'  


셋째, 일을 놀이처럼 해야 주인이다. 


클럽이나 디스코텍의 무대 위에는 전문 무용수가 있다. 그 아래 언저리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춘다. 같은 공간인데, 사람들은 돈을 내고 춤을 추고 무용수는 돈을 받고 춤을 춘다. 문을 닫을  때쯤 해서 "30분 연장!" 하고 DJ가 외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와우!" 하고 환호하겠지만, 무용수들은 아마 죽을 맛일 것이다.  한쪽은 놀고 싶어서 춤을 추고,  한쪽은 일이라서 춤을 추기 때문이다. 커플끼리 등산을 가면 초코바 하나라도 더 챙기면서, 군대에서 행군하면 군장 무게를 줄이려 숟가락 하나라도 빼놓는 것과 같은 심리다. 


객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한다. 먼저 주고, 먼저 감사하고, 놀듯이 해야 주인이다. 주인이 제일 행복하다. 회식 모임에서도 '오늘은 내가 쏜다' 하는 호기로운 호스트가 제일 마음이 상쾌하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주인으로 행동해야 피곤을 모른다. 피카소가 말하길, 자신은 사람을 접대하는 일이 가장 힘든데, 그림을 그리면 하루 열 시간이고  열다섯 시간이고 지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붓을 잡을 때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화가지만 '일'이 아니라 '놀이'로 그림을 대했던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오늘 할 일들을 체크한다. 


중요한 것들부터 순서를 매겨 포스트 잇으로 붙인다. 문득 복도에서 지원팀 과장님 목소리가 난다. 늘 새벽 일찍 출근하는 과장님이다. 총무 업무라 기본적으로 바쁜데, 동호회 회장에, 주말이면 교회에서 하루 종일 이런저런 봉사에, 점심시간마다 바리스타로 직원들에게 커피를 내리고, 헬스장 개인 PT도 매일 빠지지 않는다. 집에 가면 아기를 돌보느라 하루 서너 시간 밖에 못 잔다는 데도, 열정적으로 생활하는 '신기한' 분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생글생글. 옷차림도 알록달록, 사내 베스트 드레서. 


언젠가 퇴근 길에 "이것저것 다 하시려니 힘들지 않으세요?" 물으니, "나는 회사에 놀러 온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었다. 법륜스님의 수처작주가 과장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씀이려나. 월요일 아침의 무기력이 이제 좀 진정된다. 법륜스님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먼저 주고, 먼저 감사하고, 놀듯이 일하라. 


인트라넷으로 쪽지라도 먼저 날려야겠다. 

"과장님 좋은 한 주 되세요." 

작가의 이전글 #79 파울로 코엘료의 글쓰기 힌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