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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3. 2015

#82 나도 하늘을 나는 브래지어를 보고 싶다

제목 붙이기의 어려움에 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꽤 많이 모았다. 


내가 편집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별로 책을 읽는 꼼꼼한 사람도 아닌데, 하루키 책만 유달리 그렇다.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백구가 떡볶이집을 기웃거리듯, 퇴근 길마다 신림역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하루키 매물이 나오는 족족 사왔더니 가랑비에 옷 젖고, 은근히 주는 정에 마음 뺏긴다고 어느새 책꽂이에 하루키 책만 책꽂이에 두 칸 꽉꽉이다. 내가 잘 모르는 재즈 에세이와 기행문 두어 권을 빼놓고 한글로 나온 책은 웬만큼 구해 놓은 것 같다.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나 <1Q84> 같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길 "팬들은 장편 소설보다 단편 소설을, 단편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 


사실 장편보다 단편이 재미있고, 단편보다 에세이가 술술 읽힌다. 언젠가 하루키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면서도 읽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그랬는데, 내 식탁에 새우탕면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중이라면, <상실의 시대> 대신 에세이를 들고 싶다. 새우탕면의 건새우가 촉촉이 익을 시간이면 그의 에세이 한 편은 넉넉히 읽을 수 있다.  


 

새우탕면에 무엇보다 적합한 것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 같은 에세이집이다. 글의 무게랄까, 인생관과 철학이 한 시간쯤 푹푹 고아 낸 한방백숙처럼 묵직한 것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슬픈 외국어>지만, 밀가루 면발처럼 짧은  3분짜리 호흡에는 보다 가벼운 에세이집들이 어울린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말고도 이렇게 편한 책들이 몇 권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랑겔한스 섬의 오후> 였던가...<채소를 먹는 사자.. > 뭐시기 였던가 제목이 그랬던 것 같다. 


새우탕면 에세이들은 하루키가 서른 살 좀 넘어서, 그러니까 <상실의 시대>로 이름을 떨치기 전에 쓴 글이다. 한 편이  두세 쪽 남짓. 길이도 다들 일정하다. 그가 젊은 소설가 시절에 생계를 위해 잡지에 연재했던 짧은 에세이들인데(잡지 이름이 뭐라더라...'주니어 영 보이' 던가.. 꽤 유치한 2류 잡지다. 이미 폐간되었다고), 유명해진 후에는 하드커버로 제본되는 호사를 누린 셈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일상에서 느끼는 하루키의 따스한 감성. 표현이 참 좋다. 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끌리지 않을 수 없고, 베스트셀러  한두 권으로 하루키를 접한 사람이라면 그 관심에 쐐기를 박을 수 있으며, "하루키, 거 뭐 정신 좀 이상한 작자 아냐?" 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음.. 생각보다 이상한 청년은 아닌가 보군" 하고 좋은 인식을 심을 수도 있다. 이래저래 실(失)은 적고 득(得)은 많은 책인 셈이다. 


소제목들도 그렇다. 


- 밸런타인데이 초콜릿과 무말랭이 

- 아내가 UFO를 '유포'라고 읽을 때 

- 하늘을 나는 브래지어 

- 이혼한다는 점괘에 흔들렸던 이야기 

- 맛있는 두부를 먹기 위한 요령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그리고 선뜻 지갑을 열어 사고 싶게 만드는)' 제목들 아닌가. '하늘을 나는  브래지어'라는 소제목을 보고, 두세  쪽짜리 본문을 펴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냔 말이다. 막상 확인해 보면 별 것은 아닐지라도. 


원래 행복이란 그런 거다. 은근히 흐르는 꽃 향기처럼 바람따라 슬쩍 코 끝을 스칠 때는 '작지만 확실한 것' 같아도 '어디 제대로 맡아주마' 하고 달려들면 암술과 수술에 코를 들이박아도 향기가 나지 않는다. 소제목을 언뜻 보는 순간 느껴지는, 본문을 펴보고 싶은 알루미늄 포일 같은 얇디 얇은 충동과 설렘. 행복은 그런 것이다.  


원고에 제목을 붙여야 할 일이 있어서 이래저래 고민 중인데 딱히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것이 없다.  지난해에 문학상에 여기저기 글을 끄적이다가 깨달았는데, 좋은 글이란 '좋은 글을 써야지'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잔뜩 써서 쌓아두다 보면 '어, 이건 제법 좋은 글이네' 하고 나중에 알아채게 되는 것 같다. 


제목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이리저리 흘러 다니던 카피와 문구들을 부지런히 모아두었으면, 쓸데없는 것이라도 도움이 될 텐데. 막상 쿠션 있는 의자에 앉아, 머그 잔에 카누 커피를 타 두고, 더블 에이 하얀 종이 위에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탁' 하니 올려두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브래지어' 같은 제목이 떠올라야 할 텐데. 


슬쩍 보는 순간, 본문을 펴보고 싶은 얇디 얇은(아니지. 무지막지한, 확고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충동과 설렘이 드는 제목이어야 하는데. 그건, 봄바람이 솔솔 부는 베란다에 서 있다가 이웃집 브래지어가 훨훨 날아가는 것을 보는 행운이라도 필요한 일이려나. 


나도 하늘을 나는 브래지어를 보면 좋으련만. 

# 이 때 저는 첫 책에 대한 제목을 붙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완성본은 아니고요, 출판사에 넘길 원고에 붙일 제목 말이지요. 이 때 고민하여 붙인 제목이 아래와 같습니다. 괜찮은가요? 저는 자식처럼 애정이 가는 제목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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