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부지런히 나이를 먹어가는 일에 대하여.
내가 지어낸 말은 아니다. 무에서 유로 온전히 한 사람이 창조해냈다고 인정할 수 있는 표현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느냐만, 아무튼 나의 머리를 굴려 빚어낸 것이 아니요 다른 텍스트를 통해 관자놀이 안쪽 해마 어딘가에 얌전하게 앉아 있다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는 이야기다.
나는 표현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표현의 '소유권 주장'에 관심이 없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우리네 문단이 며칠째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로 시끄럽다. 나로서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니 '침묵 속의 공감' 같은 표현을 자신의 글에 끼워넣기 위해 표절을 '감행'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다. 굉장히 멋진 문장이 있고 그것을 나의 이야기 속에서 꼭 독자에게 제공하고 싶으면 원작자에 대한 경의를 포스트잇으로 함께 붙여 내놓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레스토랑에서 에비앙 생수를 페트병째 서빙하듯이.
내가 알기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떤 단어들 위에 점을 찍어서 포스트잇을 대신했다. 간단한 방법이다. 독자가 그 포스트잇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면 또한 글을 쓰는 즐거움이 아닐까. 단 한 개의 "Insanely Great(스티브 잡스의 말이다)"한 표현으로 부와 명성이 좌우되는(정말 그러한지는 의문) 시의 세계라면 '절도'를 감행할만한 동기라도 있을 터. 두꺼운 소설을 쓰면서 꼭 그래야 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내가 '문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 충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나저나 '부지런히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라는 표현을 나는 하루키로부터 빌려왔다. 대략 이런 취지의 말이었다. '그저 부지런히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읽는 순간에는 칼날처럼 번쩍거린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의 순간에 이렇게 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하루키의 조언이 무의식 속에는 묵직하게 남아있었던가 보다.
작은 고민이 있었다.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땀을 흘리고, 밥을 벌면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아무런 제약 없이 글을 써왔다. 형식의 일관성도, 내용의 촛점도 없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가 뜨면 빛을 쬐는 농작물처럼 머리와 가슴에 쏟아지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글로 옮겨 적었다. 햇수로 2년. 그러다보니 제목을 붙인 편지 봉투도 어느덧 150개를 넘겼다.
이 글들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다른 이들의 블로그에서 흔히 나누는 카테고리 중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맛집 리뷰도 아니고, 서평 블로거도 아니다. 영화 감상평은 전복죽 속의 전복처럼 드문드문 쓸 뿐이고, 공부하는 방법이나 자기 계발의 길을 북소리 둥둥 울려 가리키기도 하지만 '나를 따르라' 식의 우격다짐보다는 '나도 힘드네요' 하는 중얼거림이 훨씬 많았다. 이야기의 재료는 결국 일상. 하지만 마음 속에는 어떤 방향성이 분명 존재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며칠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강아지를 앞세워 뒷산을 오르던 주말, 비에 젖은 바위를 오른 발로 디딜 때 툭 하고 저 말이 튀어나왔다.
"부지런히 나이를 먹어가는 일에 대하여"
시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우리 몸에 아로새겨진 시간을 일러 나이라 부른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아무리 아니 가려 발버둥쳐도, 혹은 아무리 속히 가려 내달음해도 결국 처음에 줄 선 그대로 새치기 없이 차례차례 먹어간다.
누군가는 드러누워 벌레처럼 먹어갈 것이고, 누군가는 1분 1분을 은전 한닢처럼 귀히 여길 것이다. 야구 감독 김성근은 24시간 야구 생각만 하려 차를 끌지 않았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연습과 공연이 톱니바퀴처럼 짜인 하루 일과에 1분의 오차가 드물다. 어차피 먹는 나이지만 '부지런히' 먹어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닐런지. 선택이야 각자할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싶은 욕심이 냄비 아래쪽에 조금쯤은 남아 있다.
하여 이 글들은 부지런히 나이를 먹어가는 일에 대한 기록이고 싶다. 그 과정에서 맛보는 기쁨과 깨달음과 괴로움의 흔적이 여기 이 글이었으면 한다. 비록 아무리 자잘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일상이고 손에 쥔 현실이라면 그저 열심히 글로 옮겨적는 것이 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