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가 그 길을 갔었다면 어땠을까.
누군들 알았을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자리에서 이 일을 하고 있을 줄. 나 같은 경우, 몇 년전에는 이름도 몰랐었던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 회사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회사가 있고, 우리가 아는 회사는 극히 일부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하물며, 우리가 알고 있는 회사라고 할 지라도, 그 회사를 직장으로 다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밖에서만 확인가능한, 그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에는 동감할 수 있으나, 내가 그 가치를 생산하는 일부가 되는 것은, 그 방식에 따라 동감할 수도 있고, 반감할 수도 있다.
지금 서 있는 이 길을 선택할 때에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인가. 주변 사람에 물어보기도 하고, 구글에 검색해서 끝페이지 까지 관련된 페이지를 찾아보기도 했을 것이며, 유료로만 제공되는 일부 현직자들의 리뷰를 보기위해 결제를 할지말지 망설이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 길이 내 마지막 선택이 아니라면, 그 다음 발걸음을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들어가서 만나는 팀원들은 어떤지, 도무지 해당 팀원에게만 들을 수 있는 정보들에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생각난다. 마지막 순간에는, 내가 포기하는 것은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어떤지 등 정말 다양한 고민들을 하게 만든다.(참고로 난 INFJ이다. 망상의 끝판왕)
그렇게 결정해서 발걸음을 옮긴 결정도, 외면한 결정도 있을 것이다. 이 때, 끝끝내 선택하지 않았던 그 길에 대해서는 한동안 그 선택 자체가 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주식을 팔고나서 오르는지 내리는지 지켜보는 것 처럼, 내가 있었을 수도 있을 그 자리가 지금은 어떤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혹시 그 자리가 빛나보임과 동시에 내 자리가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면 그 때의 결정에 대해서 '한 번 가볼걸 그랬나' 싶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그 당시 내 결정의 기준이 확고했고 확실했었더라도, 그 기준을 만져보면서 위로한다고 하더라도, 깔끔하게 잊어버리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짧게는 취직과 이직에 대한 얘기일 수 있지만, 멀리는 대학교 학과를 선택하는 얘기였을 수도 있고, 더 멀리는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는 얘기였을 수도 있고, 더 멀리로는 내 꿈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누구나 가슴에 이루지 못한 꿈 하나 정도는 품고 살지 않는가. 이미, 애시당초, 옛 저녁에 포기해서 아주 꺼져버린 불길이라고 생각해도, 그 꿈을 꾸던 당시로 돌아가면 내심 기분이 달라진다. 괜스레, 남몰래, 그러나 조금은 간절히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한 발자국을 내딛어본 적이 있다면, 그 한 걸음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것은 먼 훗날, 작가가 되기 위해 학원을 찾아본 내 젊은 날에 대한 보상이다. 글을 써보고 싶다고 조심히 고백하고 비아냥을 받던 내 어린 날에 대한 위로다. 글을 써보고 싶었다면,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으니, 언젠간 글을 쓰겠구나 라고 응원해주던 내 큰 외삼촌에 대한 감사이다. 그리고 지금은 180도 다른 곳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근로하고 있는 내 청춘에 대한 휴식이다.
나는 평범한 회사에 종속되어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근로소득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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