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사진이나 인생맛집보다는 일상사진이나 일상맛집을 더 좋아한다. 내가 들어오면 당연하게 비빔밥을 내어주시는 분식집, 면을 안 먹는 나를 위해 면 대신 튀김 하나를 더 주시는 초밥집. 지금은 재건축 들어가서 사라진 20년 넘게 산 어렷을 적 전셋집 사진. 회전율 빠른 대학가 상가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시원 사거리 사진. 꼭 행복하거나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였고, 대단히 맛있고 유난스런 맛의 음식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시간들 중 많은 부분들을 지켜준 고마운 것들에 대한 흔적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교양수업으로 문예창작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등단하신 시인분이 오셔서 시에 대해 강의를 하는 수업이었다. 매주 사진 한 장과 그와 관련된 시 한 편을 써서 내는게 과제였는데 만만치 않았다. 얼마나 대단한 걸 써서내야할까 생각하며 초반에는 열렬히 고민했더랬다. 그러다가 점점 하굣길, 내 스마트폰 배경화면, 늘 지나다니는 한남대교 같은 것들이 시의 소재가 되었더랬다. 물론, 점점 귀찮아져서 그런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만큼 창작이 반복되니, 일상적인 것에서도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은 매번 버스로 지나다니는 한남대교를 걸어서 건너보려고 했다. 그 다리 중간에서 찍는 밤 풍경은 새삼 예쁘기도 하고 이색적일 것 같아 시도 했는데, 너무 무서웠다. 사람이 다니라고 만든 다리가 아니기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정말 좁았고, 차는 빠르게 달렸으며, 나와 차의 차이는 얇은 가드레일 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조금만 어지러워서 비틀대는 순간 차에치여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나 이미 다리는 절반 정도 건넜고, 다시 돌아가느니 다 건너는 것이 낫겠다싶어 끝까지 건넜는데, 다 건너자마자 다리가 후들거려서 의자에 앉아 잠깐 쉬었다 간 기억이 난다.
그 경험에 대한 사진을 남기고 시를 뭘로 적을까 했다. 처음에는 '죽음'을 키워드로 삼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죽음의 느낌과 가까웠었으니까. 그런데 30살도 안된 새파란 젊은 애가 '죽음'을 키워드로 삼고 하면 너무 허세같아보여서 이내 그만뒀다. 그렇게 써간 시는 교수님 맘에 들지 못했다. 내가 놀랐던 점은, 교수님이 먼저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생각나지 않았냐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했고, 허세 같아서 안 썼다고 했는데, 허세가 좀 있으면 어떠냐면서 다음부턴 좀 더 솔직해져 보라고 하셨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인생사진이 좀 허세 같아보인들 어떠며, 일상사진이 좀 구차해보인들 어떨까. 둘 다 내 인생에 각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 쪽을 너무 기피하지도, 한 쪽만을 너무 고집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허세로 기분을 달래보고, 가끔은 적당히 일상을 살피며, 내 삶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