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oud Silence
Sep 22. 2024
날이 많이 선선해졌다. 밖에 나가서 산책하기 정말 좋은 날씨다. 이런 날씨의 변곡점, 극렬한 더위에서 천국 같은 맑음으로 지나오는 시기를 아마 서른 번 정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몇 번이야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 밥도 누가 겨우 먹여줘야 먹었을 텐데. 밥을 혼자 먹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간다고 했어도, 대단히 반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니까. 대학교에 가서도, 개강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언제나 2학기는 1학기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고, 그 분위기는 나름의 설렘을 가지고 있었다. 봄의 설렘과는 다른 성숙한 나에 대한 설렘이었을까. 1학기의 어수선함이나, 어리숙함은 내겐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뿌듯함, 어쨋든 작년과는 다르게 한 학년 높아져있었고, 그만큼 이 학교생활에 더 적응해 있는 모습, 그리고 그만큼 여유롭게 친구들과 캠퍼스를 거닐며 각자의 일상과 앞으로의 미래를 얘기하곤 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겪는 이러한 날씨의 변곡점, 정확히는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이 더욱 반가웠다. 일단 출퇴근 길이 더 가벼워지지 않는가. 여름은 옷만 가벼워지지 발걸음은 내내 무겁고 힘들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 아니었는가. 에어컨이 없었으면, 그 어디서도 견디기 어려웠을 바깥의 공기는, 내 모든 행동을 제약했다. 정말 북극의 추위정도로 덥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이러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정말 힘든 출근길을 거쳐 일터로 왔을 텐데, 괜시리 더 조심하게 된다. 에어컨을 틀긴 하지만, 꼭 어떤 구역의 사람들은 추워서 가디건을 입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구역을 피해앉을 수 없는 사정의 사람들에게도 날씨가 선선해진다는 것은, 이러한 에어컨의 역설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직장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이동도 조금 더 자유로워지지 않는가. 더울 땐 엄두도 못낸 한강 나들이, 집앞 산책, 뒷산 트래킹, 주말 등산 같은 것들을 조금씩 계획하게 된다. 해가 아직 쨍쨍하다면, 양산 정도 준비해서 나가면, 햇살의 방해 없이 가을의 공기를 맘껏 즐길 수 있다. 어쩌면 집앞의 산책로를 걸으며, 마음에 담아둔 얘기, 집에선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꺼내볼 수도 있다. 혼자서 뒷산에 가더라도, 뒷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야경 바라보는 데에 더 적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미루고 미뤄왔던 주말 등산은, 조금 있으면 알록달록한 단풍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고, 하산 후의 식사는 여름은 주지 못하는 개운한 맛이 있다고 본다. 여름을 견딘 우리에게 가을은 이렇게나 많은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이 끝나고 뒷풀이로 간 치킨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두 달후에 결혼한 친구, 저번주에 헤어진 친구, 몇 년째 솔로인 친구, 결혼을 고민하는 친구. 이 나이대 가장 큰 고민은 연애와 결혼이다. 답이 없는 이 영역에서 각자만의 답을 찾아나가고자 고군분투한다. 직장에서 살아남기도 힘든데, 가정을 꾸리자니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어 아는 것만 많아지고, 따지는 것도 각자 다 다르고, 말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말하고 싶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최근 1년 정도를 돌아 봤을 때, 만족할만하게 성장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스스로 생각되는 것이 걱정이다. 직장 내에서 계속 도돌이표를 찍는 느낌이고, 과연 나만의 성과를 내고 있는지, 위에서는 알아주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느낀다. 매년 연봉협상을 하면서 상사에게 내 1년을 1줄정도로 요약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는데, 내년에는 눈에 띄게 말씀드릴게 없다는게 걱정이다. 남은 3.5달 정도를 잘 보내야 하는데, 뚜렷한 목표나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일상에 변화가 있어야 할 타이밍 같다. 이 날씨 처럼 나에게 선선한 선물들을 가져다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