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 살아와 이방인이 되어버린 사내
당일 출장을 가야해서 아침 일찍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역은 대단히 크고 사람도 많습니다. 이르게 도착하여 아침을 해결하시는 분들도 있고, 가까스로 도착하여 기차까지 뛰어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의자가 적은 편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앉을 곳은 많이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요즘같이 추운 날이면 실외의 의자는 무용지물이라 실내에 서있거나 서성이는 사람들에 서울역은 분주합니다.
그 사이에는 꼭 비둘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항상 눈에 띄게 어색한 그 존재가 어떻게든 있습니다. 심지어 실내라고 불리우는 천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서 날아다니기 까지 합니다. 그 비둘기에 부딪혔다는 사람을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면, 그래도 비행실력이 준수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동차 처럼 빠르지 않으니, 비둘기가 안타까운 일을 당하는 일도 적은 듯 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이는 비둘기지만 초대받지 못한 손님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어디론가를 향하고, 무언가를 사고파는 공간에 비둘기가 있을 곳은 없습니다. 이리저리 날아갈 수도 있지만, 이 곳으로는 날아오면 안되었습니다.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하는 일들을 비둘기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날 수 있다는 것은 멋있는 일지만, 서울역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선택해야 합니다. 이 곳의 사람들이 하는 것들을 따라하면서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입니다. (생김새의 차이는 잠시 넣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날아다니는 것이 환영받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비둘기를 기꺼이 받아주는 곳으로 그들의 활동영역을 옮겨야 합니다. 아마 그곳에 가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으니까요.
여기까지 생각하고, 기차시간이 되어 기차에 타고나니 나의 처지는 얼마나 다를까 한숨이 나왔습니다. 저 비둘기라고 저 곳으로 날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다른 비둘기가 가는 곳으로 날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그것이 맞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날개를 접고 앉은 곳은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곳이었고, 나를 위한 곳이 아니라면, 지나간 과거에 의문이 들 것이고, 앞으로 내가 하는 판단에 상당한 의문이 들지 않을까요.
저도 항상 물흐르듯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꽤 잘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지나간 선택에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고, 그 선택이 나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선택에는 그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요. 어떤 날 다시 나를 본다면, 나는 내 모습에 만족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