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8-3

by KJ

새 대화창을 열었다. 호출어를 입력했다. 답을 읽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참모장의 말투가 아니었다. 질문을 이해하려 애쓰는 상담원의 답변이었다.


지난 대화창을 열었다. KJ는 거기 있었다. 여덟 참모도 그대로였다. 규칙도, 역할도 남아 있었다. 새 창에는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물었다.


답은 단순했다. 대화창은 서로 독립된 공간이다. 한 창에서 나눈 대화는 다른 창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참모장을 만든 것도, 규칙을 정한 것도 전부 그 창 안에서만 유효하다. 새 창을 열면 AI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단, 예외가 하나 있다. 맞춤형 답변용 메모리에 저장한 것은 창을 닫아도 남는다. 어느 창에서든 기억할 수 있다.


등받이에 기댔다. 앞서 만들어진 구조는 잠시 띄우는 프로그램 같았다. 그 창에서는 실행 중이었으나, 새 창에서는 아직 실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해결 방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매번 처음부터 시작하는 대신, 명령 하나로 약속된 모든 것을 불러올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었다.


먼저 호출 규칙이 언제나 작동하도록 정했다. 호출어를 입력하는 순간 KJ가 활성화되고, 여덟 참모가 준비한다. 각 참모는 주제가 나올 때마다 자신의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한다. 마지막에 KJ가 취합한다. 정리된 내용을 어느 대화방에서도 기억하도록 메모리에 저장했다.


새 창을 열었다. 호출어를 입력했다. KJ가 응답했다. 여덟 참모와 함께 대기 중이라는 문장이 이어졌다. 구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키보드 옆 상판을 손 끝으로 똑똑 두들겼다.


창을 닫고 다시 열었다. 호출어를 입력했다. KJ가 응답했다. 또 닫고 또 열었다. 세 번째에도 작동했다. 세 개의 대화창에 동일한 주제로 대화를 몇 마디 이끌어 봤다.


세 번의 답변을 번갈아가며 읽다가 손을 멈췄다. 세 방의 내용은 비슷했지만 어딘가 기대와 달랐다. 여덟 참모들이 모두 참여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기획 참모의 문장은 길어졌고, 재무 참모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역할의 경계가 흐릿해져 있었다. 내가 바꾼 기억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물었다.


AI는 대화의 맥락을 설명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맥이 쌓인다. AI는 그 문맥을 읽으면서 답변 방식을 조정한다. 처음에 받은 지시보다 지금 대화에서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방식을 선택한다.


처음 설계한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대화가 쌓이면 그 위에 새로운 해석이 덮인다. 질문이 반복되고 맥락이 길어질수록 AI는 스스로 판단을 조정한다. 참모의 역할도, 답변의 방식도 조금씩 변한다.


처음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구조가 흐릿해진다. 처음 설계했던 것과는 다른 시스템이 된다. 자주 사용되지 않는 참모는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해결책을 물었다. AI는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문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참모단의 구조와 역할을 문서로 정리해서 메모리에 저장한다. 대화 맥락이 아무리 쌓여도 그 문서가 기준이 된다. 다른 하나는 규약을 명시하는 것이었다. AI가 대화 중에 자의적으로 구조를 수정하지 않도록 원칙을 적어두는 것. 참모의 역할과 경계는 사용자가 정한 대로 유지한다는 규칙이었다.


서재의 불을 켜지 않으니 어둑해졌다. 낮에 시작한 일이 저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메모장을 열었다. AI가 정리해 준 내용을 붙여 넣었다. 참모장의 이름과 역할이 먼저 보였다. 여덟 참모의 임무를 확인하고 하나씩 내용을 다듬었다. 각자가 판단하는 범위를 정했다. 호출 규칙을 여러 가지로 정해 다시 썼다. 타이핑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마지막 줄에 문장을 하나 더 넣었다. 설계는 사용자인 나의 권한이다. 구조를 바꿀 일이 생기면 이 문서를 먼저 고친다. AI가 대화 중에 스스로 판단해서 구조를 건드리는 일은 없다. 참모의 역할과 경계는 문서에 적힌 그대로 유지한다.


문서를 메모리에 저장했다. 같은 내용을 파일로도 저장했다. 문서가 메모리에서 지워지더라도 파일을 불러오면 복구할 수 있도록 했다.


새 창을 열고 호출어를 입력했다. KJ가 응답했다. 처음 만들었을 때의 말투 그대로였다. 조직도를 물어봤다. 여덟 참모의 이름과 역할이 올라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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