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사서 한 생각, 마음이 데워지는 순간
토요일에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서 대뜸 ‘만나면 해줄 얘기가 있어’라며 문자가 왔다. 나는 무슨 얘긴데 토요일까지 기다려야 하냐며 그냥 말해보라고 했지만, 친구는 ‘그때 결정될 것 같아. 토요일에 얘기해 줄게’라며 답장이 왔다. 궁금했지만 그때 가 보면 알 거라 생각하고, 하루 이틀 지나 선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아직 토요일도 아닌데 이렇게 말했다.
“나 개명했어!”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학번으로 만나 올해로 벌써 17년째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그 친구가 이름을 바꿨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름을 바꿨을지 짐작이 되어 당황하지 않은 척했지만, 그녀와 함께한 시간만큼 그 이름에 정이 들어버렸는지 개명 소식을 격하게 환영해 주지 못한 것 같아 전화를 끊고도 한참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언제쯤이 새 이름으로 불러주기 적당한 때일까 생각했다. 부르는 나도, 듣는 친구도 어색하지 않을 적당한 때. 익숙함이란 참으로 무섭다.
몇 달 전 같은 회사 대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이 회사에 온 지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회사가 어색하다고. 그러면서 나에게 언제쯤 익숙해졌냐고 물었다. 이직해 본 적 있는 직장인이라면 이런 혼란스러움을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으레 ‘우리 회사'라고 하는 말이 이직하고 나면 얼마나 어색하고 낯부끄러운 단어인지 말이다. 이직을 여러 번 한 나로선 이직 후 너무 빨리 '우리 회사'라 칭하면 나 자신이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라고 느껴지고, 부침개 뒤집듯 마음을 쉽게 뒤집어버리는 이중인격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면 어느 쪽도 포기 못 하고 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느낌이 든달까. 그렇게 한동안은 새 회사에 적응하면서 생기는 괴리감이 한참을 따라다닌다. 대리님께 이제 회사에 좀 익숙해졌냐며 친구의 개명 소식에 어수선한 마음을 전하니, 아마도 회사에 다니는 동안엔 힘들 것 같단다. 그리고 개명한 친구의 이름은 어색하더라도 바로, 즉시, 냉큼 불러주라고 덧붙였다. 그래야 좋은 기운이 친구에게 간다고.
어쩌면 서로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적당한 때는 없는지도 모른다. 김춘수 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 준 것처럼, 약간의 어색함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어 입 밖으로 내었을 때 비로소 그 적당한 때에 가까워져 있는지도. 이름은 이름일 뿐이라고 무심하게 생각했었는데,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서 다정하게 부를 이름이 하나 생겼으니 서로의 꽃이 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담아 불러봐야겠다.
그리고 새 이름으로 첫 생일을 맞는 그녀에게, 앞으로의 날들은 좋은 일만 일어나길 그리고 그날들에 나도 함께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