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주행거리만큼

#004 사서 한 생각, 마음이 데워지는 순간

by 나리

친구를 만났다. 전 직장 동료이자 현 직장 동료였던 독특한 인연의 친구. 그녀가 몇 달 전 같이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이 독특한 인연을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간간이 바뀌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소식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선뜻 연락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오랜만에 그녀에게서 톡이 왔다.


“나리씨 이직 생각 아직도 있어요?”


그녀가 당긴 불씨로 이력서를 냈던 일은 (여전히 회사에 다니는 내 처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없었던 일이 돼버렸지만, 그 톡 하나로 우리는 얼굴을 보기로 했다.


우리 인연은 내가 문래동에 있는 회사에 같이 다니면서 시작되었다. 고작 10개월을 다녔던 회사에서 그 중간쯤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소장님과 나 둘 뿐인 회사에 실장 직급의 그녀가 새 직원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대화를 나눌 상대가 생겼다는 기쁨과 함께 동성에 동갑이라니!! 나보다 직급이 높았지만 해야 할 일이 사람 머릿수보다 훨씬 많았던 소규모 사무실이라 정작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만날 외부 일정으로 바쁘신 소장님 덕분에 여유 있는 점심시간을 보내며 아주 빠르고 깊숙이 가까워졌고, 결국 소장님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공동 퇴사를 감행했다. 이것이 우리 인연의 끝은 아니었다. 일하는 본부는 다르지만 같은 회사에 취업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도 종종 점심 식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며 지금까지의 인연을 이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얼굴은 참 좋아 보였다. 결혼하고도 한동안 바쁜 회사 일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한 그녀는 퇴사할 때와는 다르게 새로운 일을 준비 중이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전보다 한층 안정돼 보이는 그녀의 상기된 목소리에서 지금 사는 삶에 대한 온전한 행복감과 만족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 계획하는 일에 대한 설렘까지도. 만난 적 없는 그녀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이 긍정의 기운이 아마도 어느 정도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있다니까.


그녀와의 짧은 시간을 정리하며 내가 물었다.

"그때 샀던 미니는 잘 타고 다녀요?"

내가 중고차를 샀던 시기와 비슷하게 중고차를 구매했던 그녀의 차, 미니. 주행거리 5만 킬로미터 정도에 샀는데 벌써 10만 킬로미터가 넘어간다며, 잘 타고 다닌다고 했다. 내 차 또한 비슷한 시기에 그녀의 차 주행거리와 비슷한 차를 샀지만, 이제 겨우 6만 킬로미터를 넘기고 있었다. 불현듯 집 지하주차장에 고이 모셔놓은 내 차가 생각났다. 차를 구매하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이도 달린 그녀의 자동차 주행거리가 부단히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그녀의 부지런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속으로 내 차의 주행거리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오늘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같은 나이지만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대장부 같은 그녀와 내가 쏟아낸 모든 말과 모든 일이 생각대로 이루어질 것만 같은 밤이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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