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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은 Apr 12. 2022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좋아하는 문장들을 모아 #2

*순서에 의미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절들을 기록해두기 위한 글입니다.




33.


매일의 기도는 항상 같았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죽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 오정연, <남십자자리> 中




34.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을 꿈꾸지 못하는 인간이 인간일까. 자신과 이미 닮은 것만을 사랑하는 존재가 아름다울까.


- 박문영, <무주지> 中



35.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36.


이건 아이인 적 없다는 듯이 구는 어른들이, 단 한 번도 동화를 믿어 본 적 없다고 착각하는 어른들이, 환상을 꿈꿔본 적 없다고 믿는 우매한 어른들이 만든 끔찍한 이야기다.


- 천선란, <나인> 中



37.


이 세계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괴로운 거 같아. 누군가가 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찢고 나간 틈으로 또 다른 세상이 보여.


- 천선란, <나인> 中




38.


"무조건 믿어 준다고 해서 고마워."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존재하게 한다.



- 천선란, <나인> 中



39.


"이상한 사람이지?"

제인이 자조 어린 물음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이상하긴 하죠. 세상 사람들이 다 이상한 것만큼."


- 손원평, <프리즘> 中



40.


그렇게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 뜨거운 도시의 거리 위에서, 한겨울에도 늘 여름인 마음 속에서, 태양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우주가 점이 되어 소멸하는 그날까지.


- 손원평, <프리즘> 中



41.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이 땅을 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것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천선란, <어떤 물질의 사랑> 中




42.


우리는 그곳에서 지구가 잃은 공기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 내 메시지가 닿는 속도만큼 나는 그 행성으로 나아갈 것이다. 침전되지 않도록 우주 밖으로 외로움을 내던지면서.

그곳에 아직 별이 뜬 사막이 있을까.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 천선란, <어떤 물질의 사랑> 中



43.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사람이 돌아왔다. 하필 네가 있던 곳이 우주여서 나는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숨 쉬는 모든 곳이 네 아래에 있었다. 나는 너를 보낼 때 끝까지 웃지 못하고 기어코 눈물을 터뜨린 순간을 후회했고, 우리의 시간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네 말을 생각하며 시계를 볼 때마다 너의 시간을 추측하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가 정의 내리지 않고 묻어둔 관계에 대해 홀로 공식을 세워 풀어 내려가기를 반복했고 가끔은 네가 가까이 다가가는 그 블랙홀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우주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너는 그곳에서 내 생각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 천선란, <어떤 물질의 사랑> 中




44.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 신철규, <눈물의 중력> 中




45.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더는 이 회사에 다니지 않는 때가 온다면, 그리고 그때 이곳을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게 아니라 정확히 바로 지금 이 장면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 나는 지금 이 순간의 한복판에 서서 이 순간을 추억하고 있었다.


- 장류진, <달까지 가자> 中




46.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과거를 지운다는 것은 단지 끔찍했던 어느 기억만 선별적으로 지우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잔혹하고 끔찍한 기억들은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들과 떼어낼 수 없이 얽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에서 만들어낸 요리의 식감, 가게를 돌보던 어머니의 느릿한 손길, 첫사랑의 띄엄띄엄한 설렘, 아버지의 매질을 피해 동생과 함께 동네 어귀를 내달리던 기억, 수학여행에서 처음으로 마신 소주의 아릿한 맛 같은 것들을 모두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 행성은 우울했다.


- 이서영,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 한> 中



47.


여기 함께 실려 있던 물질이 반물질에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그 물질은 반작용으로 사라졌다. 돌아가는 중이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는 한.


- 이서영,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 한> 中



48.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中



49.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에 그렇다. 꽃을 보고 드는 반가운 마음은 이것이 곧 시들 것을 알기 때문이고, 청춘을 예찬하는 이유도 쏜살처럼 빨리 사라져버림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과 적응의 동물이기에 이 유한성을 잊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기에, 하루하루는 소중하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같이 이별에 가까워지고 있다.


-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나를 숨 쉬게 하는)> 中




50.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中



51.


생의 어떤 한순간이 평생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 하고, 동시에 아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中



52.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 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中



53.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中



54.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운명의 한계로 오인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잔의 외형이나 크기로 인해 차별당하거나 파괴당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규모를 존중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 안희연, <단어의 집> 中



55.


나는 그 애의 울음을 참는 얼굴을 알고, 우리가 눈 마주친 순간 반으로 쪼개진 커다란 슬픔을 안다.


- 안희연, <단어의 집> 中



56.


팔을 들어 슬픔을 받치고 선 모양. 나란한 두 개의 기둥.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다. 그러니 팔이 아프면 조금 꾀를 부려도 좋아. 오늘은 나의 친구들에게 그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써야겠다. 당분간은 내가 받치고 있을게. 손으로 안 되면 발로라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그러니까 다녀와.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숲길도 걷다 와, 기다릴게.


- 안희연, <단어의 집> 中



57.


사람은 도시와 같아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전체를 거부할 순 없었다.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이나 교외 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다른 장점이 그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 매트 헤이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中





58.


"새로운 환경에서도 지면 안 돼, 시모카와."

"노력할게."

"거짓말이야. 져도 돼."


- 이치조 미사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中




59.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아픔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해서 슬픔을 소화해가는걸까.

슬픔을 잊게 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계속 사로잡혀 있어서는 앞으로 걸어나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슬픔을 잊게 된다는 게 슬펐다.


- 이치조 미사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中




60.


모두 언젠가는 잃을 것들이다. 없어질 것들이다.

그래도, 온갖 것이 변해간다 해도. 인생을 삶으로써 과거가, 아름다운 것이 흐릿해진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다.

마음이 그리는 세계는 언제까지고 빛바래지 않는다.


- 이치조 미사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中










좋아하는 문장들을 모은 첫 번째 글을 업로드한 이후, 다시 차곡차곡 쌓아 온 문장들입니다. 다시 서른 개 즈음의 문장이 모이면 세 번째 글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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