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직 무언가가 되고 싶다.

어른이 되어가는 일에 대하여

by 적응형이방인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 가는 과정이야


어렸을 때 엄마가 내게 해 준 말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다를 거야.’

근거 없는 자신감과 호기로움이 앞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

끝까지 가보지 못한 채 평범해야 했던 엄마의 삶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해 간다.




그 시절 진부한 스토리지만,

우리 엄마는 8남매 집안의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집엔 ‘귀한 막내아들’이 있었다.


욕심도 많고, 그림도 그리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지만 늘 기회에 목말랐던 소녀였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해 삼 남매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았고, 아빠의 사업이 기울었을 때는 거친 생활 전선도 마다치 않으며 가정을 지켜냈다.


그땐 몰랐다.
그 평범해 보이던 엄마의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엄마를 닮은 나는

어릴 적부터 늘 진취적이고, 리더가 되는 삶을 꿈꿨다.

소위 말하는 ‘멋지게 일하는 여성’이 되고 싶었다.


아이 때문에 커리어를 내려놓는 선배들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다.


사회에서의 성취는 거창하고 빛나 보였고, 육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아휴직 2개월 만에 나는 처절하게 깨달았다.


내게는 회사 일이
육아보다 스무 배 정도는 쉽다는 사실을.




적어도 회사 일에는 퇴근이 있었고, 잘하면 칭찬이 돌아왔고, 못하면 이유라도 있었다.

반면 육아는 끝이 없었고, 정답도 없었으며, 매일이 처음 겪는 문제의 연속이었다.


내게 아직도 육아는 세상 그 무엇보다 막막하고 비효율적인 싸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새끼는 다 알아서 키운다”던

엄마의 말처럼 아이들은 무사히 자라주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던 여느 여자 선배들처럼, 아이들을 위해 내 일을 내려놓았고 이 먼 미국에 왔다.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남편, 아이들과 마주한 시간 속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다시 배우게 되었다.


가족은 내가 살아오며 이룬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성취다. 성실하고 착한 남편과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예쁜 두 아이.


이 평범한 행복은 나의 ‘인생 최대의 업적’이다.


이제 엄마를 이해할 만큼 나도 어른이 되었고, 이 가정은 내게 많은 충만함을 준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무언가가 되고 싶다.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다만 매일 아이들을 케어하고 요리하는 지극히 평범한 엄마가 된 나에게도, 아직 식지 않은 열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외면하지 않고 싶다.


“너는 여전히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확신을 누구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가족이라는 내 인생의 업적을 지키면서도,

내 일을 사랑하던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는 또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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