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미국 방구석에서 비로소 알게 된 글쓰기의 힘

by 적응형이방인

교육에 큰 관심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없던 나의 엄마가 어린 내게 시킨 유일한 것이 있었다. 바로 글을 읽고 쓰고 말하는 연습. 밤늦게까지 동시와 시조를 외우고, 웅변 원고를 직접 쓰던 기억.

각종 말하기 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며, 내 안의 문장들을 밖으로 꺼내어 세상과 소통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살았던 그 기억들이 여전히 선명하다.


남 앞에 서기를 좋아하던 내 장점을 키워주려던 엄마의 안목 덕분이었을까. 나는 물 흐르듯 언론정보학을 전공했고, 대학 시절 내내 가장 많이 한 일 또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나의 글쓰기는 성격을 달리했다. 기획서와 이메일, 업무 보고 프레젠테이션. 나의 문장들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보다는 일의 성과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내 생각과 마음이 담긴 진짜 '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늘 마음 한구석에 미뤄둔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이렇게 머리가 맑고 후련한 적이 있었던가.

2년 동안 두 번의 출산을 하고서 시작된 수면장애는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졌었다. 6개월간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그 상담사 분이 내게 다시 일기를 써보라고 권하며 하신 말씀이 있다.


모든 생각과 감정은 밖으로 나와야 해소됩니다.
그저 글로 적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치유된 것이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복직 후 연년생 육아와 회사를 병행하던 워킹맘에게 글쓰기란 사치에 가까웠다. 나를 위한 일들을 늘 가장 후순위에 두어야 했던 시절, 글을 쓰는 시간은 여간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선 가질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그러다 일을 그만두고 미국에 왔다.

이제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많은 것이 '시간'이 되었다. 원래도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문득 저 상담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복잡한 마음을 글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도록 쏟아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첫 문장부터 글은 막힘없이 터져 나왔다. 글을 쓸수록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은 더 후련해졌다.




후회를 남기는 수다보다, 마음의 평온을 주는 글쓰기

미국에 온 이후 한동안은 매일 집 밖에 나가 뭐라도 해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24시간을 쪼개 살던 내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텅 빈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은 가슴 답답한 고역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 내 마음을 털어놓고 돌아오는 길은 늘 공허했다. '그 말은 왜 했지', '내가 말하려던 건 이게 아닌데' 하는 후회가 남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은 달랐다.

자유롭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복잡한 생각들이 텍스트로 정렬되자 비로소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내 마음을 내가 직접 봐주고 들어주어서일까. 요동치던 생각들이 멈추고 내면이 정돈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일하지 않는 상태'의 불안함을 늘 안고 살았다.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무런 생산성 없는 이 시간은 왠지 죄악과도 같았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더 이상 안절부절못하며 밖으로 나돌지 않는다.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서도, 나는 매일 어제보다 더 멀리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휘발되는 일상을 나만의 문장으로 기록하는 일

엄마로서 보내는 하루는 매일 반복되고 금세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일들을 글로 적고 내 생각을 덧붙이기 시작하자, 나의 일상에도 선명한 의미가 생겼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초조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좋은 것은 주변 사람과 나누라고 배웠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말하고 싶다. 오늘 밤부터 당장 글을 써보라고. 대단한 글이 아니더라도 모든 글에는 가치가 있고, 글쓰기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다.


일단 한번 써보시라. 가만히 앉아서도 가장 멀리까지 나아가는 나를 발견하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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