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가 잠든 밤, 나는 나를 깨운다

밤 8시 17분, 나의 퇴근 시간

by Still Na 여전히 나

밤 8시. 드니가 잠들었다. 아기를 재우며 나도 함께 눈을 감는다. ‘오늘은 꼭 일찍 자야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수십번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쪽은 나만의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정확히 8시 17분, 드니가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하고 조용히 숨을 내쉰다.


‘퇴근 완료.’


아이를 재운 뒤의 밤은 내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하루 24시간 중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나의 시간, 그게 바로 이 8시 17분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은 언제나 너무 짧다. “오늘은 정말 일찍 자야지.” 늘 그렇게 다짐하지만, 막상 그 귀한 시간을 놓치기 싫어 자꾸만 취침시간이 늦어진다. 결국 새벽이 되고, 다음 날 아침 피곤에 절은 얼굴로 또 하루를 시작한다.


드니가 잠든 시간, 그 고요한 순간이 참 편하고 좋다. 모두에게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진다고 하지만, 아기가 있는 부모에게는 그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하루 24시간 중 진짜 ‘나의 시간’은 고작 3~4시간 남짓. 그마저도 언제 깨질지 몰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밤에 혼자 커피 한 잔을 마신다거나 따뜻한 차를 천천히 마시는 일, 이렇게 평범했던 일상이 언제부터 이렇게 어렵고 감사한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기를 키우면서 나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잠깐의 고요, 한 모금의 커피, 그리고 나 자신에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짧은 순간들. 이 모든 게 지금의 나에겐 가장 큰 휴식이자 선물이다.


요즘 내 밤은 참 단순하다. 유튜브를 보고, 사진을 정리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드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드니한테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분명 ‘육아 퇴근’을 한 것 같은데 또다시 ‘육아 연장 근무’를 하는 셈이다. 스마트폰 속 나는 여전히 업무 중이다. 쇼핑, 정리, 검색… 전부 ‘드니 관련’이다. 이상하게 또 웃음이 난다.

가끔은 SNS에서 육아 공감 콘텐츠를 보며 같이 웃고, 또 같이 공감하며 울기도 한다. 아기 낳고 누가 아줌마 아니랄까 봐 급 눈물이 많아졌다. 화면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묘한 동료애, 전우애 같은 게 생긴다. 공감되는 짧은 위로의 글 한 줄에 마음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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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만 이런 게 아니야.’


가끔은 소아과 의사 선생님의 영상으로 ‘우리아이 대처법’ 같은 영상도 본다. 정보를 얻으려는 건지, 위로를 받으려는 건지 모를 때도 있지만 그런 영상을 보며 스스로 위로한다. 가끔은 ‘내 시간’이 이렇게까지 아기와 연결되어 있어도 괜찮은 걸까 싶다가도 결국엔 웃음이 난다. 이 시간마저도 결국 나를 다시 엄마로 만들어주는 시간이니까. 육아는 참 이상한 일이다. 퇴근이 없는 직업이지만 그 안에서도 퇴근 후의 나를 꿈꾸게 만든다. 낮엔 돌봄에 전념하고 밤엔 나를 회복한다. 그런데 그 회복의 방법이 또다시 육아이니, 참 웃기다.


가끔 남편이 퇴근하면서 묻는다. “오늘 뭐 했어?” 그럴 때면 속으로 대답한다.

“인생 3회차 회장님의 비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지.”

말로는 하지 않지만, 그 말이 어쩐지 나를 뿌듯하게 만든다. 드니는 내 하루를 소모시키지만 동시에 채워주는 존재다.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그 아이의 미소 하나면 마음이 풀린다. 나를 지치게 하고, 또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존재. 그게 드니다.


오늘도 나는 퇴근했고, 잘 버텼다. 그리고 내일도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또 일할 것이다.

사직서는 안 낼 거다. 우리집 상사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기 때문에..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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