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11/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MADE IN
2시간을 어떻게 기다리나 싶었는데 순식간에 시간이 가버렸다. K가 세미나를 듣는다고 해서 나는 2시간 동안 무얼할지 고민해야했다. K는 아르코 미술관이 무료이니 한 번 가보라고 했고 처음으로 밖에서만 보단 아르코 미술관에 들어갔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전에 전시했던 작품들이 있었다. 거기서 이완 작가를 알게되었다.
[MADE IN] 이란 작품은 8개인가 9개의 스크린으로 된 영상 작품이다. 작품의 설명은 이렇다.
한 마디로 뻘짓의 정수. 베트남에서는 고무를, 인도네시아에선 마호가니나무 테이블을, 대만에서는 설탕을 직접 기계의 도움없이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보는 것. 왜?
세상을 이루는 구조의 본질과 작동원리를 알아야 ‘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를 온전히 아는 것은, 타인, 집단, 더 나아가 사회, 국가, 세상을 이해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예술은 구조, 그리고 개인과 집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이완 -
대형마트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그 수많던 공산품들. 카드만 긁으면 그게 무엇이든 내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들.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자본주의를 탐구하는 하나의 멍청한 과정이랄까.
이완 작가의 영상물에는 공산품을 만드는 과정만 담은 것이 아니라 해당 나라에 대한 근현대사를 함께 담으려 했다(굉장히 흥미로움). 그 중 고무를 만들러 간 베트남 다낭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증오를 기념하고 기억하다니. 우치하 사스케?? 증오비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 그 마을에서 74명의 주민을 학살했다고 적혀있었다.
우리는 일본의 만행에 그리도 분노하면서 왜 자신의 만행에는 침묵할까.
2시간을 후딱 보낸 후 K와 나는 현충원에 벗곷을 보러 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묘가 있었다.
소비자가 되지 않기로 한 이완 작가는 한 스푼의 설탕을 만드는데 수 천 달러의 돈과 한 달의 시간을 소비했다. 소비에 저항하고 싶어도 소비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 굴래는 누군가에겐 축복이고 누군가에겐 고통이다.
작년부터 목공을 취미로 하고 있는데 흔히 DIY라고 하면 더 자족적이며 친환경적이고 소비지양적이라는 느낌이 나지만 사실은 평소의 소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효율도 떨어져서 목공회사에서 합판 한 개로 만들 수 있는 걸 2개를 사용한다든지, 대량으로 구입을 못하니 더 큰 값을 지불하고 자재를 산다든지 소비의 측면에선 오히려 더 과소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절약적인 측면에서도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효율의 이름 아래 사라진 소중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또 하나의 전시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생활용품?으로 시대순으로 전시한 작품이 있었는데 이 또한 굉장히 흥미롭다. 어디서 수집했는지 무명의 중 고생이 작성한 70-80년대의 일기장부터 신문, 잡지 등 교과서적 시대상이 아닌 정말 그 당시 트렌디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잘 보여준다.
71년 6월 하지에 쓴 일기장. 주인공은 보통 해가 뉠 때 저녁을 먹는데 이 날은 유독 배가고팠고 오늘이 하지라는 것을 떠올린다. 아, 오늘은 1년 중 가장 해가 긴 날. 오늘 저녁은 1년 중 가장 늦게 먹는 저녁에 되겠군. 누군가 이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쓰면 참 재미있겠다 싶었다. 늦은 오후부터 가장 늦게 해가지는 그 시간까지의 이야기.
한국사 연대기 작품에서 말로만 듣던 선데이서울을 직접보게 되었다. 첫페이지에는 접었다 펼수있는 긴 책지에 수영복을 입은 여성이 있었다. 그 뒤에도 한 페이지짜리 수영복 사진이 몇 장 더 이어졌다. 나에게 흥미를 끌었던 것은 기사의 내용보다 광고의 내용이었다. 기억으론 발행일이 80년대 후반이었는데 지금의 광고와 전혀 다를바가 없다. 대부분 다이어트 약광고가 많았다. 먹기만 하면 빠진다는 하나도 변한 것 없는 다이어트 광고. 먹기만 하면 커진다는, 오래 지속된다는 남성정력보조기구? 광고.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것은 펜팔을 가장해 이성을 만나는 펜팔데이트? 광고는 지금 익명의 사람과 앱으로 연결해 만나는 데이트앱과 완전히 똑같았다. 변한 것이라고는 그저 테크놀로지. 테크놀로지의 진보는 인간의 삶을 더욱 문명화시키고 고급지게 만들 것이라는 어떤 당연한 믿음이 선데이 서울을 보며 사라졌다. 아,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취업광고란엔 90프로가 다 술집 유흥업소 광고이다.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제한되어 있었던 건지 지금보다 시대가 관대했던건지는 모르겠다만.
인스타를 하고 페북을 하고 비행기로 외국을 쉽게 가는 시대가 왔지만 크게 변하진 않을 것 같다. 더 평등해졌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없던 차별들이 생겨났다. 분명 시간을 줄여주고 거리를 줄여주는 많은 것들이 생겼지만 여유부릴 시간은 없다한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잘해야만 살아남는 시대에 있지 않나 싶다. 익선동, 연남동을 가봤는가? 감탄을 금치 못하는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했지만 1년 후에 다시 가보면 여전히 살아있는 곳은 정말 몇개에 불과하다. 그걸보며, 아니 저렇게 이쁘게 꾸미고 맛도 좋은데도 실패하다니. 시대를 탓할뿐이다. 누구보다 열심 노력했고 창의력을 불태웠지만 결국은 그렇게 되는. 졸라게 잘살고 싶은 욕심도 졸라게 성공하고 싶은 의욕도 없는 나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