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를 보는 일곱 가지 시선
본격 치즈 생활! 기투 치즈 @gitu_cheese
아마도 마트에서 돈 내고 산 치즈는 슬라이스 치즈와 피자 치즈였을 것이다. 조금 더 투자했다면 큐브 치즈 정도? 대형 마트 치즈 코너에 있던 치즈들도 궁금하지만 굳이 돈까지 줘가며 사 먹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치즈는 분위기 잡을 때나 먹는 거니까. 소파에 누워 편의점에서 산 4캔 맥주와 함께 치즈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까? 그날을 상상하며 본격 치즈 생활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각 지역마다, 아니 어머니의 손맛마다 김치가 다르고 특별한 것처럼 치즈의 나라 프랑스에도 마을별로 치즈가 다를 정도로 엄청난 종류의 치즈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우유가 있는 곳에는 치즈가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은 물론이고 최초의 치즈가 만들어졌던 중앙아시아 지역 그리고 생소하지만 인도로 대표되는 서남아시아에도 파니르라는 전통 치즈가 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늦지만 1966년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임실에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관심만 있다면 어디서든 치즈를 만나고 즐길 수 있는 형편이지만 그럼에도 아직 치즈는 우리에게 럭비만큼 낯선 게 사실이다.
알려진 종류만 2천 종이 넘는 치즈의 세계에 대체 어떻게 발을 담글 수 있을까? 다행히도 이 많은 치즈도 단 7가지로 정리가 가능하다!
치즈는 크게 자연치즈와 가공 치즈로 분류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자연치즈에 대해서만 다루자.
프레시 치즈, 흰공팜이 치즈, 푸른곰팡이 치즈, 셰브르 치즈, 워시 치즈, 반경질 치즈, 경질 치즈. 이렇게 7가지로 나뉜다. 읽어보니 뭔가 더 복잡해진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프레시 치즈 Fresh cheese – 갓 만든 요리는 언제나 옳다!
유산균이나 응고제를 사용해서 우유를 물과 응고된 덩어리로 분리한다. 물은 유청 Whey, 응고된 순두부 같은 푸딩을 커드 Curd라고 한다. 프레시 치즈는 이렇게 우유에서 커드만 분리해 숙성 없이 먹는 치즈를 가리킨다. 유청과 커드를 분리했지만 여전히 커드 안에는 많은 수분이 있어 보존기한이 짧다. 하지만 걱정 말자. 너무 맛있어서 냉장고로 돌아갈 일은 없을 테니까.
가장 유명한 프레시 치즈로는 이탈리아의 모차렐라가 있다. 모차렐라는 분리된 커드를 뜨거운 유청에서 수타면 반죽하듯 계속 늘여 반죽하면 덩어리였던 치즈가 가느다란 실을 뭉친 것처럼 섬유 상태가 된다. 이렇게 잘 늘어난 치즈를 야구공 크기로 뭉쳐 떼어 소금물이 담그면 모차렐라 완성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모차렐라는 피자치즈 형태로 다시 한번 가공하여 판매하기 때문에 생 모차렐라 치즈를 구경하기가 어렵다.
대표적인 프레시 치즈
리코타(이태리):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치즈.
코티지(네덜란드): 리코타와 항상 헷갈리는 치즈. 엄연히 다른 치즈이다.
프로마주 블랑(프랑스): 프랑스 말로 ‘하얀 치즈’. 처음 보면 요거트인지 치즈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흰곰팡이 치즈 – 흐물흐물하고 끈덕끈덕한 부드러움
우유를 응고시켜 만든 커드에 페니실리움 칸디듐이라는 흰곰팡이균을 뿌리면 숙성과정에서 흰색 솜털처럼 자라난 균이 치즈를 덮는다. 프레시 치즈와의 차이점이 생기는데 바로 숙성이다. 분리된 커드를 틀에 넣어 물기를 빼고 흰공팜이균을 뿌려(커드를 만들 때 직접 넣기도 한다) 2~6주 정도 숙성시키면 흰곰팡이 치즈 완성이다. 숙성이 진행될수록 내부는 흰색에서 크림색으로 변한다. 겉면에는 곰팡이가 피고 안쪽보다 빨리 수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질감이 좋지 않다 생각할 수 있지만 먹어도 무방하다. 균의 집합체인 버섯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맛은 숙성을 거친 치즈이기에 이제부터 우유의 담백한 맛만 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오묘한 맛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통제된 부패의 맛, 그것이 치즈의 맛이다. 버섯향, 견과류 맛, 과일향, 나무향 등 담백 고소하기만 했던 우유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맛을 발견하는 것이 치즈의 미덕이다.
대표적인 흰곰팡이 치즈
브리(프랑스)- 치즈의 여왕. 파리와 가까운 모(Meaux), 믈랑(Melun) ,쿨로미에(Coulommiers) 등이 유명한 브리 생산지이다.
까망베르(프랑스) - 못 먹어봤어도 들어는 본 그 치즈. 노르망디 지방의 까망베르 마을에서 유래된 치즈
푸른곰팡이 치즈 –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쏴라.
고르곤졸라 피자 한 번씩은 먹어봤을 거다. 바로 고르곤졸라 치즈가 대표적인 푸른곰팡이 치즈이다. 흰곰팡이 치즈와 마찬가지로 흰곰팡이균 대신 푸른곰팡이 균을 섞어 치즈 내부에 푸른곰팡이를 번식시킨다. 숙성된 치즈 안에 생긴 푸른 대리석 모양의 무늬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푸른곰팡이 치즈는 특유의 쏘는 맛과 향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치즈로 유명하다. 치즈의 안은 나비처럼 아름답지만 향과 맛은 벌처럼 강력하다. 우리가 즐겨먹던 고르곤졸라 피자는 소량의 고르곤졸라 치즈와 피자치즈를 섞어서 만들기 때문에 호불호 없이 먹을 수 있던 것이다.
보통 치즈를 만들 때 굳어진 조직(커드)에 틈이 있으면 본연의 맛 외의 다른 맛들이 나기 때문에 커드를 최대한 단단히 뭉쳐 만들지만 푸른곰팡이 치즈는 균이 치즈 안까지 잘 번식할 수 있게 일부러 구멍을 내거나 틈을 만들어 숙성시킨다.
대표적인 푸른곰팡이 치즈
고르곤졸라(이태리) - 모두가 알지만 진짜 맛과 향을 경험한 사람은 별로 없다.
로크포르(프랑스) - 사실 푸른곰팡이 치즈 하면 로크포르를 말할 정도로 가장 대표적인 치즈
셰브르 치즈(염소젖) - 우리에겐 너무 생소한 염소 치즈
셰브르는 프랑스 말로 암염소를 말한다. 삼시세끼에서 본 잭슨을 떠올렸다면 성공! 즉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를 셰브르로 분류한다. 참고로 내가 분류하는 7가지 치즈 분류는 프랑스식 치즈 분류이다. 가장 보편적인 소젖으로 만든 치즈도 접하기 힘든 한국에서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를 만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작정하고 염소젖 치즈를 찾지 않는다면 맛볼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염소 우유도 마찬가지이고 염소 조차 본 적이 있나 싶다. 나도 마셔보지 못했지만 우유에서 양고기 냄새가 난다고 하니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꽤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유니크함 때문에 숙성되면서 엄청난 풍미를 만든다고 한다. 셰브르 치즈는 다른 치즈처럼 대형 치즈로는 적합하지 않아 대부분 손바닥 사이즈의 치즈들로 만들어진다. 다른 치즈와 마찬가지로 프레시 치즈부터 숙성치즈까지 여려 종류의 치즈가 있다.
대표적인 셰브르 치즈
샤비뇰(프랑스) - 가장 대표적인 셰브르 치즈
발랑세(프랑스) - 아즈텍 피라미드 모양의 아담한 치즈
워시 치즈(Washed Rind Cheese) - 쓰담쓰담은 치즈를 춤추게 한다.
워시 치즈는 치즈의 숙성 과정에서 말 그대로 치즈의 표면을 씻어 내는 치즈이다. 왜 치즈를 씻는 것일까. 이 치즈의 기원을 알아야 한다. 짚단 위에 뭉친 커드를 두고 숙성했었다. 숙성 중 치즈에 잡균이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 치즈 표면을 소금(물)이나 높은 도수의 술로 유해한 균을 죽일 수 있다고 여겼기에 숙성기간 동안 커드를 닦았다. 이는 리넨스 균(Brevibacterium linens)이 맘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씻는 횟수가 많을수록 풍미가 강해지고, 색도 진해진다.
워시 치즈는 리넨스 균으로 숙성을 하는데 청국장의 꼬릿 꾸릿한 냄새가 나는데 이것은 청국장의 고초균과 리넨스균이 비슷한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워시 치즈
에프와스(프랑스) - 오렌지 색의 겉면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묑스테르(프랑스) - 색으로 먹는 치즈.
비가열 압착 치즈(반경질 치즈) - 이제부터 수분기 사라질 거야
유청과 커드가 분리되고 커드에서 남은 유청을 다시금 제거해 치즈를 숙성한다. 여기서 더 압착을 가해 유청을 최대한 분리해 만드는 치즈를 압착 치즈라 하는데 압착 치즈는 다시 비가열 압착 치즈와 가열 압착 치즈로 나뉜다. 몽글몽글한 커드를 만들고 온도를 40도 이하에서 제조하면 비가열 압착 치즈, 그 이상으로 올려 만드는 치즈는 가열 압착 치즈로 분류한다. 즉 수분 함량의 차이가 두 치즈의 차이를 만든다.
반경질 치즈는 비교적 짠맛이 적고 안쪽은 부드럽다. 흔하게 접하는 슬라이스 치즈보다는 부드럽지 않지만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치즈들이 대부분 반경질 치즈이다. 숙성은 1개월부터 12개월 동안 진행되는데 규칙적으로 뒤집어 주고, 씻어주고, 솔로 닦아주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치즈이다. 하우다(고다), 에담, 체다 치즈 모두 비가열 압착 치즈에 해당한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치즈로 우리가 상상하던 치즈의 맛들은 대부분 반경질 치즈의 맛일 것이다.
대표적인 반경질 치즈
체다(영국) - 슬라이스 체다 치즈와 전혀 다른 치즈입니다.
하우다(고다)(네덜란드) - 네덜란드 대표 치즈
에담(네덜란드) - 하우다 치즈와 마찬가지로 치즈 표면을 왁스로 도포해 숙성한다.
가열 압착 치즈(경질 치즈) - 고향의 맛, 치즈다. 풍미의 향연
커드에서 수분이 더 많이 나오게 하기 위해 40도 이상 올려 제조하는 치즈를 가열 압착 치즈라고 설명했다. 수분이 더 많이 날아간 만큼 더 단단하고 더 오래 보관 가능하다. 파스타를 요리할 때 많이 사용하는 페코리노 로마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그라나 파다노 모두 경질 치즈이다. 대부분의 경질 치즈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20~30Kg이 넘는 치즈들도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경질 치즈인 콩테를 하나 만드는데 무려 우유 530리터가 필요하다. 마트에서 보는 경질 치즈는 커팅 후 포장되어 작은 조각 케익 모양인데 자르지 않은 치즈의 모습을 보면 압도적이다.
경질 치즈는 대부분 오래 숙성을 하기 때문에 엄청난 풍미를 자랑한다. 조미료를 대신할 정도로 음식에 넣어 조리하면 음식의 레벨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마법의 가루가 된다.
대표적인 경질 치즈
페코리노 로마노(이태리) - 양젖 치즈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와 함께 이태리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
콩테(프랑스) - 프랑스의 대표적인 경질 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