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ghee Aug 01. 2016

[태풍이 지나가고] 리뷰 /
인생, 원래 노답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인생에서 답을 찾는 이에게.

인생, 원래 노답이다.

- 인생에서 답을 찾는 이에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풍년이다. 얼마 전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인 [환상의 빛]이 재개봉하고, 신작인 [태풍이 지나가고(원제목: 바다보다 더 깊이)]가 개봉했다. 8월 초에는 대작 [걸어도 걸어도]가 재개봉한다고 한다. 아마도 유일무이하게 한국에서 사랑받는 일본 감독이 아닐까 싶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걸어도 걸어도]의 자매품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조금 비슷한 정서가 흐른다. 다만 [태풍이 지나가고]가 훨씬 친절하고 조금 더 따듯하다, 랄까.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를 잃은 주인공들이 영화의 문을 연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연립주택에 혼자 남게 된 료타의 엄마. 이혼을 했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가족을 만나는 흥신소 직원 료타. 내용은 간단하다. 제대로 기억되지도 못하는 문학상을 받았던 소설가 료타는 취재를 변명으로 흥신소에서 일하며 남들의 심부름을 하며 살고 있다. 유일한 낙이라면 도박과 한 달에 한 번 아들과의 만남 뿐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 싱고에게 미즈노 글러브를 사주고 싶다고 하는 료타를 보며 아들에 대한 사랑이 깊구나, 하는 순간 글러브 살 돈을 경마장에서 다 날리는 료타를 보며 료타가 어떤 인물인지 단번에 알게 된다. 아들을 만나는 날이 되고 어쩌다 같이 연립주택에 가게 되고, 저녁이 되어 싱고를 데리러 온 전 부인까지 모두 4명의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되고 때마침 태풍 때문에 연립주택에서 모두 같이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뉴스룸에서 히로카즈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말 했듯이 이 영화는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된 것은 아니다.” 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되고 나는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해보게 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꿈꾸엇던 미래에 도달하지 못한 채 현실을 살아간다. 현실을 인정하고 순응하거나, 현실을 거부하려 몸부림치거나, 순응도 몸부림도 없이 살아가거나, 우리는 어쨌든 현실을 살아간다. 


[걸어도 걸어도]와는 다르게 장면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에서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혹은 친절하게 말해준다. 고등학생의 불륜을 조사하던 료타는 고등학생을 만나 눈감아 주는 대가로 “삥”을 뜯는다. 그런 한심한 료타를 보며 고등학생은 “당신 같은 어른은 정말 되고 싶지 않네요.” 하며 저주한다. 그때 료타는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벌하게 화를 내며 말한다.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개인적인 최고의 장면이다.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한 료타가 말하기 때문에 더 슬프고, 애잔하다. 


꿈이라는 것은 일종의 환각제이다. 꿈은 꿈이기 때문에 현실로 풀어낼 의무가 없다. 오히려꿈은 꿈일 때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다. 이루어 지지 않아야 더욱 아름다운 것. 이것이 꿈이다. 동시에 이루지 못한 꿈은 현실을 초라하게 만든다. 방 3칸 짜리의 꿈, 소설가의 꿈, 교사의 꿈, 공무원의 꿈. 이루지 못한 꿈들은 현실을 괴롭힌다. 하지만 키키 키린의 대사처럼, 흥신소 사장의 말처럼 무엇을 손에 쥘 지, 무엇을 손에서 놓을지 그저 선택의 반복이 있을 뿐이다. 그 지루한 반복 속에서 간혹 행복을 발견하는 정도로 우리는 만족하며 살아 갈 뿐이다.


꿈을 말할 때는 당연히 거창한 꿈을 꾸게 된다. 료타도 엄마의 새남친도 인생은 쇼부다, 하며 남자라면 한판승부을 강조한다. 하지만 싱고는 홈런보다는 포볼이 좋다하고, 그저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한다. 우리의 꿈은 왜 항상 거창해야 할까. 포볼을 꿈꾸는 인생도 멋지다고 응원해 줄 수는 없는 걸까. 복권으로 사는 꿈은 꿈이 아닌 걸까. 포볼에 대한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 두 번 나온다. 삼진으로 아웃된 싱고는 포볼을 ‘노렸다’고 하고, 영화 마지막에서 엄마가 다음에는 홈런을 기대한다, 고 하니 “난 포볼이 좋아” 말하며 망가진 우산을 계속 비추며 영화가 끝이 난다. 


인생 원래 노답이다.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당연히 더 많다. 그렇다고 그들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인생은 어쩌면 복권이다. 철저한 우연의 산물. 인과관계로 설명 불가능함. 어쩌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당첨에는 이유가 없다. 모두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홈런이 아닌 포볼같은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지루한 반복 속에서 조금은 더 자주 행복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속 꽝없는 복권처럼 홈런은 아니지만 말이다. 포볼도 꿈이 될 수 있는 일상을 꿈꾸어 본다.


태풍이 지나가고 좋은 일이, 깨긋한 하늘이 펼쳐질 것 같지만(그렇게 기대하지만)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저기서 날아와 툭 떨어져 자리잡은 '과거의 것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숨겨놨던 과거의 짐들을 보게되고 그것을 손아귀에서 놓는 순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변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어쩌면 해피엔딩. 


행복은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받을 수 없는거란다.


작가의 이전글 고통도 뱃살처럼 관리해야 하는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