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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익재 Aug 25. 2019

글 읽기, 다시 원점에서.

빠른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평소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더불어 책을 읽는 것 역시도 좋아하는 편이다. 


게다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독일에서는 한국 책이 귀하다 보니, 일 년에 한두 번 한국을 방문할 때면 서점에 들러 한국 책을 잔뜩 사 오곤 한다.


요즘은 그래도 사정이 나아진 것이, 태블릿 PC를 가지고 있고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나와있어 그중 하나를 구독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많은 책을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이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에서 한 권의 책을 읽고서 드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불현듯 가방 속 노트북을 꺼내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오민석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의 '개기는 삶도 괜찮다'는 책인데, 사실 제목을 봤을 때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는 단순한 마음에 다운로드하여 읽은 책이다. 그리고 그 책이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여느 세상일이 그렇듯, 예상치 못한 어느 곳 혹은 어느 시점에서 사건(Event)은 일어나는 것 아닌가 싶다.

바로 알랭 바디우(Alain Badiou)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좀 거창하긴 하지만.


사실 나는 아직 그의 책 한 권 전체를 다 읽지는 못했다. 그런 연유로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내용들도 지금으로선 책의 앞쪽 부분에 기인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글을 통해 기록을 해야겠다 마음먹게 한 그 순간, 한 권 전부를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생각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고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을 더 이상 읽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의 독서법   되돌아보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로 하여금 지금 이 글을 쓰게 한 문단을 먼저 가져와보고자 한다.


"나는 수많은 독서 경험을 통해 나름의 독서 '기술'을 체득하게 되었다. 나중에야 내가 체득한 독서 기술이 바로 니체가 말한 "슬로우 리딩(slow reading)"임을 알게 됐다. 니체는 '서광(Daybreak)'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와 내 책은 느림의 친구들 (Friends of the lento)이다. 나는 지금까지는 헛되게도 문헌학자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문헌학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슬로우 리딩의 선생이다. 슬로우 리딩은 이제 나의 습관일 뿐만 아니라 취향이다." 그가 문헌학에 비유한 '슬로우 리딩'은 그에 비하면 "여러 가지 중 한 가지를 정확히 따내어, 한 발자국 물러서서 시간을 두고, 그것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며,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자라게 두는 것"이다. 니체는 서둘러 읽는 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독서법이라고 했다슬로우 리딩은 니체의 말에 따르면, "천천히심오하게집중해서신중하게내면의 생각을 동원하고 정신의 문을 약간 열어놓은 상태에서 섬세한 손가락과 눈으로 읽는 "이다."


단순히 저 문장들을 본다면 그저 그런 책에 나오는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저 부분이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지금까지 내가 책을 읽을 때, 글을 쓸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속도로 글을 읽고 써 왔는지 까지도 생각을 하게 했다. 새삼 글의 힘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저 부분을 읽고서 뒤이어 천천히, 한 자 한 자 곱씹어가며 글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한 글자씩 곱씹어가며 읽는 것 정도야 뭐가 어려울까" 생각했던 나의 오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었다.



책에서 나온 대로 먼저 천천히 글을 읽어보려 했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과정에서 천천히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에 나의 의식을 꽤나 들여야 했다. 내 머리와 내 눈은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내용과는 관계없이 그저 빠르게 읽어나가려 마치 브레이크 없는 열차와 같이 내달리기에 바빴고 나는 그 열차에 강제로 제동을 건 탓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나의 의식을 추가로 들여 글을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는 것이 이렇게 고통(?)과 인내를 요하는 일이었던가"하는 생각이 들게 된 찰나, 두 번째 충격이 나의 머릿속을 휘감았다.


새로운 독서 '행위' 혹은 '방법론'에 뒤이어 나온 하나의 현상 혹은 증상이었다. 작가가 혹은 작가가 인용한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더해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어땠던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앞서 열거한 내용들은 일면 마라톤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생도, 새로운 책을 읽는 것도 일면(面) 하나의 '장기전(長期戰)'일진대, 우리는 당장의 진도 혹은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읽는 것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많이 넘어간 책의 페이지수를 보며 스스로 뿌듯해하며 많은 것을 했다 스스로를 자위(自慰)할 수는 있을지언정, 실질적으로 그 책을 통해 얻길 바랬던 것을 얻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한 권의 책에서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겠는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누각'을 뜻하는 '사상누각(閣)'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어떻게 보면 참 기본적인 것들인데, 기본이라서 등한시했던 지난 시간들이 여러 의미로 쓰라리게 다가온다.




글을 마무리하며


글을 쓰다 보니, 단순히 빨리, 많이 읽어왔던 지금까지의 내 독서법 혹은 습관에 알 수 없는 회의감이 몰려온다. 


당장은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는 독서가 힘이 들겠지만, 인간이 또 습관이 생기면 거기에 맞추어 순응하는 동물이 아니었던가.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박힌 돌'을 대체할 새로운 돌을 굴려보고자 한다.


바라건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단순히 일시적인 감정으로 휘발(發)되지 않기를.



1. 자칫 지금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홍보가 되는 것으로 오인받을 수 있어 구독 중인 애플리케이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비슷하더라고요,


2. 이 글을 빌려 이런 생각에 이를 수 있게 해 주신 오민석 단국대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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