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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래 Oct 01. 2016

역발상 과학 (13) 현실에서 어렵다면 가상에서?

비용 절감되는 가상 공장 및 가상 발전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방법이야 어떻든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의미다. 이 같은 속담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최근 들어 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가상의 공간을 통해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가상의 공간을 통해 풀어가는 역발상 사례들이 늘고 있다 ⓒ free image

지금 소개하는 ‘가상 공장’과 ‘가상 발전소’는 현실에서는 더 이상 혁신적인 방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생산 최적화’와 ‘에너지 확보’라는 과제를, 가상의 공간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 역발상의 결과물들이다. 가상공간에서 미리 물건을 만들어보거나 남는 에너지를 거래하면서, 비용을 절감하고 시간을 단축시키는 사례인 것이다.


가상 조립기술로 시험생산에 드는 비용 절감


글로벌 자동차제조사인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근 ‘Industry 4.0’이라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가상 조립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기술은 작업자가 부품을 손에 들고 조립하는 동작을 취하면 센서가 이를 인식하여 화면에서 마치 실제로 조립하는 것과 같은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험생산을 위해 고가의 부품이나 장비를 사용하면서 테스트 비용에도 많은 돈을 썼지만, 가상 조립 기술을 사용하고 나서부터는 미리 조립 과정의 문제점이 없는지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포드나 GM 같은 글로벌 자동차제조사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개발단계부터 제조단계까지의 전 과정에 가상 조립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공장의 숙련 기술자들에게 가상의 조립 과정을 체험해보도록 한 뒤,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제조라인을 꾸미는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가상조립기술 ⓒ Mercedes-Benz

이처럼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효율적 생산 시스템 개발은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벤처센터 내에 최근 중소기업들의 생산 혁신을 지원하는 시설이 들어섰다.


‘가상기술 산업지원센터’라 이름 붙여진 이 시설에서는 제조업체들이 공정 설치나 개선 작업을 추진하기 이전에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산 라인을 미리 제작해볼 수 있다. 이른바 중소 제조업체들의 생산최적화를 위한 전문 지원시설인 것.


센터는 공장자동화(FA)를 제어하는 산업용 제어 컨트롤러(PLC)와 가상조립 시뮬레이터, 전문 소프트웨어 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가 공장 설계도를 가져와 장비와 라인구성 요소를 입력하면 공장의 가동 상태와 오류 발생 우려지점, 그리고 최적의 생산효율 포인트 등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센터의 관계자는 “본격적인 생산에 앞서 제조 과정을 시뮬레이션하게 되면 실제 제조 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고, 최적의 생산효율을 찾는 기간도 줄여준다”라고 말하며 “대기업처럼 대규모 투자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절약만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가상발전소


가상현실하면 대부분 시뮬레이션 기술을 떠올리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가상 발전소’처럼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언제라도 가동 가능하고 에너지를 판매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거래 시스템도 이에 해당된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는 러시아워가 있는 것처럼, 전기의 경우도 사용이 몰리는 피크 시간대가 있다. 이 같은 전기 부족 시간대에 누군가가 아껴놨던 전기를 제공해 준다면, 발전소를 추가로 가동하거나 새로 지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국가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상당한 이익일 수밖에 없다.


가상발전소는 이처럼 전력이 부족한 시간에 절전이나 자가발전 등을 통해 모아두었던 에너지를 대신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따라서 화력 발전소처럼 오염물질을 배출하지도 않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처럼 환경과 경관을 훼손시키는 일도 없다.

가상발전소를 통해 확보한 에너지는 수요자원거래시장을 통해 판매된다 ⓒ 산업통상자원부

실제로 지난해에 서울 소재의 16개 대학이 에너지 절약과 발전소 줄이기 정책의 일환으로 가상발전소 사업에 동참한 바 있다. 대학들이 절약한 에너지를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수요자원 거래시장에 판매한 결과, 연간 2억 원의 수익을 올린 바 있다.


수요자원 거래시장은 정부가 구축해 놓은 에너지를 거래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다. 판매자는 전기값이 싼 심야나 새벽 시간대에 에너지를 확보한 뒤, 전기가 부족한 시간대에 비싼 값에 팔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수요자원 거래시장을 네가와트(negawatt) 시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네가와트란 전력의 단위인 ‘메가와트(Megawatt)’와 부정의 의미를 가진 ‘네거티브(Negative)’가 결합하여 탄생한 신조어로서, 전기를 새로 생산하지 않고 절약을 통해 만든다는 뜻이다.


현재 네가와트 시장에는 서울 소재 16개 대학 외에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 소유의 건물과 17개의 사업소 시설이 함께 시간당 5㎿의 전기를 아껴서 판매하고 있는데, 이는 5㎿급 발전소를 지은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력거래소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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