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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피해의식을 벗어나는 길

평균의 힘 II


평균, 자기 객관화에 이르는 길 

    

 우리는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 수 있을까?  자기 객관화다. 자기 객관화가 무엇인가?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너’를 통해 ‘나’를 보는 것이다. 즉, 자기 객관화를 하려면 ‘나’에게 눈을 떼고 ‘너’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너’를 알게 되어야 비로소 ‘너’의 시선을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가 아닌 ‘너’를 보는 일. 이것이 자의식 과잉과 피해의식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기 객관화에 이를 수 있을까?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가 아닌 ‘너’의 시선을 가져야만 한다. 바로 그 ‘너’의 시선으로 다시 ‘나’를 보는 일이 자기 객관화이니까 말이다. 이 자기 객관화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 ‘평균’이다. 평균은 비교적 쉽게 자기 객관화에 이르게 해준다. 그것이 평균의 힘이다.    


 물론 사회과학적인 ‘평균’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아니 때로 그것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하루 평균 568.41명 사망!’ 이것이 한 사람의 죽음과 남겨진 이들의 슬픔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준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차가운 통계적 '평균'라 하더라도 나름의 쓸모가 있다. 차가운 평균은 때로 자기 객관화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평균은 ‘너’(타자)의 집합이니까.



"너 주변을 알라!"


 평균은 온통 ‘나’에게만 시선이 쏠려 ‘너’를 볼 수 없는 이들이 자기 객관화에 이를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평균을 통해 ‘너’의 시선을 엿볼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알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나’가 아니라 ‘나’ 주변의 평균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평균은 피해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이 오래된 전언은 당분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너 주변을 알라!” 


 이제 다시 ‘한주’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한주’는 어떻게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할 것인가? 평균을 찾아보면 된다. ‘한주’는 돈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관심과 불친절, 비난에 시달린다고 믿고 있다.  그런 ‘한주’가 우리 사회의 연평균소득을 찾아보면 어떨까? 


 그때 ‘한주’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그다지 가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평균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 속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너’(타자) 속에서 ‘나’ 위치를 찾아갈 때, 조금씩 ‘너’의 시선으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한주’의 피해의식은 조금씩 옅어져 갈 테다.      



‘너’를 볼 수 없다면, ‘평균’을 보라!     



 평균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피해의식은 오직 ‘나’만 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강도를 당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피해의식이 생긴 이들이 있다. 이들은 밤길과 찻길을 과도하게 두려워한다. 이들은 어떻게 피해의식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들 역시 평균의 힘을 빌리면 된다. 연평균 강도사건 혹은 교통사고 발생률을 찾아보면 어떨까?

      

 전체 인구수 대비 평균 강도사건 혹은 교통사고 발생률은 자신의 생각만큼 그다지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 강도사건 혹은 교통사고에 대한 ‘나’의 피해의식은 오직 ‘나’(나의 상처)만 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피해의식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자신의 피해의식이 현저히 옅어지게 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차가운 칼로 요리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그것은 메스가 되어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평균 역시 그렇다. 차가운 평균은 사회적 현상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내’가 볼 수 없는 ‘너’를 드러낸다. 그렇게 평균은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할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온통 ‘나’만 보고 있느라 ‘너’를 볼 수 없다면, 평균의 힘을 빌리는 것도 건강한 삶을 위한 훌륭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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