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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맞는 훈련도 중요하다.

얼굴도 단련이 될까?

얼굴도 단련이 될까?

초등학교 때 즈음이었을까? 허름한 복싱 체육관을 문밖에서 엿 본적이 있었다. 관장처럼 보이는 사람은 끝에 글러브를 단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었고, 선수처럼 보이는 사람은 두 손을 뒤로 한 채 그 앞에 서 있었다. 관장처럼 보이는 사람은 그 막대기로 선수처럼 보이는 사람의 얼굴을 퍽퍽 때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렇게 때리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평소에 이렇게 단련을 해놔야 시합 때 이기는 기라!”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훈련법이다. 복부는 맞으면 단련이 되지만 얼굴은 단련이 안 된다. 얼굴은 맞으면 맞을수록 더 약해지기 마련이다. 치과의사들에 따르면 턱은 한 번 안 좋아지면 그 상태로 유지되거나 더 나빠지기만 한단다. 실제로 안면 맷집이 좋았던 격투기선수들이나 복서들도 전적이 많아지면서 안면이 약해져 종종 다운이나 KO당하기도 한다. 그러니 안면을 단련한다고 선수의 얼굴을 때리는 훈련은 황당하고 당황스런 짓이다.


 전형적인 ‘키보드 워리어’였던 나는 복싱 이론만은 중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로 복싱을 준비하면서 결코 맷집 훈련은 하지 않았다. 특히 안면 맷집 훈련은 말이다. 관장 역시 그런 무식한 훈련은 시키지 않았다. 기술적이고 영리한 복싱을 추구하는 관장은 안면 맷집 훈련 같은 무식한 훈련 대신 정교하고 세련된 복싱 테크닉을 가르쳐주려고 했다. 그런 지도방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젠장, 맞아야만 했다.

그런데 젠장, 프로 시합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얼굴 맷집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복싱을 기술적으로 배우고 또 훈련해도 막상 링에 올라서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맞는 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맞아도 안 죽어! 훈련했던 거 하면 돼!’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소용이 없었다. 막상 상대가 전력을 다해 휘두르는 펀치를 몇 개 맞고 나면 여지없이 몸은 굳었고, 움직임도 경직되었다.


 어떤 문제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면돌파다. 맞는 것이 두렵다면 해결책은 간단했다. 맞아야만 했다. 안면 맷집 훈련이 필요했다. 그건 얼굴을 단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했다. 한 스파링에서 아예 ‘오늘은 제대로 한 번 맞아보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스파링에 올라가서 어떻게 때릴지 보다 어떻게 맞을지에 신경을 썼다. 그날 신나게 맞았다. 스파링에서 내려오니 머리가 딩딩 울려서 어지러울 정도였다.


  “형님 오늘 왜 그렇게 대주셨어요? 원래 그렇게 안하시잖아요?” 관장은 그 스파링이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왜 그렇게 대주는 스파링을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복싱 기술보다 맞는 걸 겁내는 걸 고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서 그랬어요.” 한동안 관장은 말이 없더니 답했다. “그래도 스파링에서 그렇게 대주면 안 돼요. 일단 몸에도 안 좋고. 실력도 안 늘어요.” 다음 날 관장은 내가 몸을 다 풀자마자 “형님, 헤드기어 쓰고 (링으로) 올라오세요.”라고 말했다.



맞는 훈련도 중요하다.

“형님 이제부터 3라운드 동안 저만 공격할 거예요. 형님은 맞기만 하시는 거예요. 피해도 되고, 가드 하셔도 되요.” 공이 울리자 관장은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크게 휘두르며 때렸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때리지는 않았다. 맞으면서 알았다. 관장은 얼굴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맞는 것에 익숙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게다. 그렇게 맞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주고 싶었던 것이다.


 스파링에서 얻어터지는 게 무식한 훈련법이었다면, 이렇게 맞는 건 세련된 훈련법이었다. 맞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게 맞춤형 훈련법이었던 셈이다. 참 별일이다. 나는 한 대도 못 때리고 내리 3라운드를 맞기만 했는데도 고마운 마음이 들다니 말이다. 관장과 함께한 맞는 훈련과 몇 번의 스파링을 통해 맞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 뒤로는 링에서 상대와 마주섰을 때, 혹은 상대가 강하게 압박해 들오는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경직되는 일은 현저히 적어졌다.     



맞을 수 없다면, 때릴 수 없다.


복싱은 불과 두세 뼘 되는 거리에서 순식간에 몇 번씩 주먹이 오고 가는 싸움이다. 그래서 아무리 기량이 탁월한 복서라 해도 한 대도 맞지 않고 상대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 이 말은 결국 때리기 위해서는 먼저 맞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복싱 초심자들이 복싱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맞는다는 것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때릴 수 없기 때문에 복싱을 잘할 수 없는 것이다.


 조금 무식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복싱은 맞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적어도 맞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너무 컸던 내게는 분명 그랬다. 한 참을 얻어터지는 훈련을 한 후 어느 스파링에서 분명히 느꼈다. 상대가 수많은 펀치를 쏟아낼 때 한 참을 맞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차분하게 상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맞으면 강펀치도 사실 맞을 만 하다는 걸. 상대가 많은 펀치를 쏟아내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제 내가 공격할 차례가 되어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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