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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복싱은 위험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삶은 건강이 나빠지고, 불안정해지고, 위험해지는 과정이다.

복싱은 위험하다.

왼쪽 갈비뼈 골절, 오른쪽 갈비뼈 골절, 이석증(일종의 어지럼증), 왼손 검지 인대 부상, 오른손 약지 인대 부상. 프로 시합을 준비하면서 병원에서 치료받았던 부상이다. 나머지 병원에 가지 않고 대충 자가 치유한 부상을 합하면 훨씬 더 많이 다쳤다. 프로 시합을 준비하면서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았다. 그렇다. 복싱은 위험하다. 왜 안 그럴까? 단 몇 주 만에 10kg 이상을 감량해야 하는 일은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 또 때리고 맞는 것에 고도로 훈련된 두 사람이 죽기 살기로 치고받는 것이 어찌 위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였는지 서른일곱, 조금 늦은 나이에 프로 복서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말이 많았다. 복싱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미쳤어? 그 위험한 걸 왜?”라고 말했다. 또 나름 운동 꽤나 해봤다는 사람은 “골병든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네가 몰라서 그래”라고 말했다. 천방지축인 내 삶을 비교적 잘 이해해주는 아내도 “오빠 나이가 몇 살인지 알아?”라고 말했다.


 프로 복서를 준비하면서 그네들이 내게 했던 이야기는 대체로 다 옳은 이야기였다는 걸 확인했다. 달랑 글러브 하나 끼고 링에 올라가 상대와 죽기 살기로 치고받아야 하는 건 미치지 않고는 하기 힘든 일인 것 같기도 했다. 골병이 들지는 나이가 좀 더 들어봐야 알겠지만 이곳저곳 몸이 상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위험하지 않은 스포츠가 있겠냐마는 직접 상대를 때려야하는 복싱은 그 중에서도 조금 더 위험한 스포츠다. 그걸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복싱은 위험해’고 말하는 이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복싱은 위험해’라고 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짧다면 짧지만 또 길다면 긴 게 인생이다. 그런 삶에 건강보다 중요한 덕목도 없다. 손에 깁스라도 해본 적이 있거나 크고 작은 병 때문에 병원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안다. 어디를 다친다는 것, 혹은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또 삶을 황폐하게 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복싱은 위험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건강, 안정, 안전을 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복싱은 위험한 그래서 미련한 운동처럼 보일 게다.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느라 건강까지 해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 자신들이 현명하고 합리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안정되고 안전하게만 살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살면 행복한지. 또 계속 그렇게 살면 행복해질 것 같은지.


 건강하고 안정되고 안전하게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을 알고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해 항상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때마다 보약도 챙겨 먹는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대기업을 그만두고 공무원이 되었다. 안전한 삶을 위해 낯선 곳으로 여행은 피하고 집에 있을 때도 하루에 몇 번씩 문단속을 한다. 그보다 더 건강하고 안정되고 안전하게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TV 채널을 돌리다 복싱이나 격투기 시합이 나오면 혀를 차며 “왜 저 짓들을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부류다.



삶은 건강이 나빠지고, 불안정해지고, 위험해지는 과정이다.


세상 사람들은 건강, 안정, 안전을 원하지만 삶은 정확하게 그 반대로 흘러간다. 삶에 건강, 안정, 안전은 허상이다. 나이가 들면 건강은 나빠지게 마련이고, 안정적이고 안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은 사실 한 없이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이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아파지는 게 삶이고, 안정적인 삶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직장도 결국 사라지게 마련이다. 안전하다 믿었던 집 앞에서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것이 삶이다.


 건강하고 안정되고 안전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행복해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런 노력이 과하면 강박증이 된다. 언제까지나 젊고 탱탱한 피부 건강을 지키고 싶은 중년의 여인을 생각해보라. 밤낮으로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바르지만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주름 앞에 거울을 볼 때마다 속상하고 불안할 뿐이다. 안정적이고 안전한 직장을 지키고 싶은 중년의 남자를 생각해보라. 밤낮으로 일을 하지만 매년 잘려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자신도 떠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며 걱정되고 불안할 뿐이다.


 건강, 안정, 안전에 집착하는 건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으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애초 불가능한 것에 집착하는 것만큼 확실히 불행해지는 방법도 없다. 그래서 건강, 안정, 안전에 집착하는 건 언제나 불행을 담보하는 일이다. 물론 굳이 건강을 해칠 필요는 없다. 굳이 불안정이나 위험에 뛰어들 필요도 없다. 가능하면 건강하게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가급적 그렇게 살려고 한다.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처럼 크게 오해되고 있는 말도 없을 게다.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은 너무 쉽게 ‘내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로 오해된다. 오해다. 진정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때로 자신의 몸을 소홀히 대한다.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은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지평을 넓혀간다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몸을 소홀히 대할 수밖에 없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을 그만두고 전세금을 털어 세계일주를 떠난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세계일주를 하면서 좋은 음식을 먹지도 못했고, 때로 위험한 장소에 있었으며, 삶은 아주 불안정해졌다. 이보다 더 몸을 소홀히 대할 수도 없을 게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사람인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건 자신의 욕망에 집중했으며, 그 과정에서 삶의 지평을 넓혀 나갔기 때문이다.


 몸을 소중히 대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몸도 소모품이다. 조금 더 오래 건강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애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비유하자면 몸은 자동차와 같다. 고장 나지 않게 점검도 받고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또 운전을 하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들은 전부 자동차를 타기 위해서다. 여행도 가고, 소중한 사람들을 태워주기도 위해서 자동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애초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썩어갈 몸 후회 없이 쓰자!


몸도 그렇다. 건강을 관리하고 안정되고 안전하게 대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들은 전부 몸을 사용해 많은 즐겁고 의미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다. 자동차가 소중하다고 매일 닦고 기름칠하고 점검만 받고 정작 자동차를 타고 멀리 여행 한 번 가지 못하는 건 너무 어리석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건강, 안정, 안전에 집착하느라 취미도, 여행도, 이직도 못하게 되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닐까?


 나이 지긋한 분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네가 아직 젊어서 그래, 나이 들면 복싱한 거 후회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썩어갈 몸 후회 없이 쓰고 싶다. 복싱을 하면서 다치고 몸이 상해서 하게 될 후회보다 세월이 지나 그렇게 하고 싶었던 복싱을 해보지 못했다는 후회가 더 괴로울 것 같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좋지만, 후회만 가득남긴 건강하고 오래 사는 인생은 싫다. 건강한 삶보다 후회 없는 삶이 더 중요하다.


 위험한 복싱을 멈추고 싶지 않다. 불안정한 작가의 삶을 놓고 싶지 않다. 건강을 해치고,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이라도 나의 욕망이 손짓하는 일이라면 용기를 내어 달려들고 싶다.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지평을 넓혀가는 걸 멈추지 않고 싶다. 어차피 썩어갈 몸뚱이 아닌가? 나에게 주어진 이 선물 같은 몸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살고 싶다. 나는 누구보다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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