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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굿바이! 자기부정

프로복서, 저주를 풀다.

처음으로 테이핑을 하며

꿈은 이미지로 각인된다. 어떤 꿈을 갖고 있을 때 그건 특정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가 꿈인 사람은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꿈인 사람에게는 학생들 앞에 서 있는 이미지, 작가가 꿈은 사람은 아늑한 서재에서 앉아 있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이처럼 꿈은 어떤 특정한 이미지로 그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게 마련이다.


 내 꿈은 프로복서다. 그러니 나에게도 각인된 이미지가 있다. 그건 멋있게 시합을 하는 장면이 아니라 관장이 주먹과 손목에 테이핑을 해주는 장면이다. 테이핑은 선수들이 프로 시합을 나가기 전에 주먹과 손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붕대를 감고 테이프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평소 체육관에 운동을 할 때는 이런 테이핑을 하지 않는다. 말자하면, 테이핑은 진검 승부를 앞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선수들이 시합 장 뒤에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손에 테이핑을 하고 있는 장면은 너무 멋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테이핑을 한 적이 없다. 프로 시합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다. 그래서 테이핑을 꼭 해보고 싶었고, 그 장면이 내게 꿈의 이미지로 각인된 것일 테다. 관장과 마주 앉아 내 손에 테이핑을 해줄 때 만감이 교차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도 원했던 꿈을 드디어 이룬다는 설렘부터 이제 곧 진검승부를 펼치러 링에 올라서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링에 서다.

테이핑을 한 사람은 링에 올라야 한다. 내 차례가 되었다. 상대와 나는 링에 올랐고 링 아나운서가 선수 소개를 했다. “신길 권투 소속, 황진규”라는 소개가 끝나자마자 “아~악!” 기합을 잔뜩 넣어 시합장이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질렀다. 여느 선수들처럼 긴장을 풀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일종의 스스로의 다짐 같은 것이었다. ‘오늘 여기서 후회 남기지 않고 모든 걸 건다!’라는 다짐. ‘미련이 남는 시합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



 1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링 중앙에 섰다. 상대와 글러브 터치를 한 뒤 시합이 시작되었다. 몇 번의 잽(앞 손으로 가볍게 공격하는 기술) 공방이 이어진 상대와 근접전이 되었다. 상대의 펀치에 몇 대 맞았다. 보호 장구 없이 10온스 글러브로 처음 맞아봤다. 생각보다 맞을 만했다. 그때부터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상대를 압박하면서 치고받는 공방이 이어졌다. 상대의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2,3,4라운드까지 진행되면서 실력 차가 났다. 상대가 훨씬 실력이 좋았다.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상대의 긴장이 풀리면서 좋은 펀치가 많이 나왔다. 상대는 영리한 아웃복싱(뒤로 빠지면서 상대를 공략하는 복싱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는 사이에 큰 충격은 없었지만, 복부와 얼굴에 많은 펀치를 허용하면서 점수를 많이 빼앗겼다. 링 코너에서 관장이 “형님, 더 거칠게 몰아붙여야 해요!”라는 주문이 들렸다. 이기든 지든 해볼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더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판정패

역부족이었다. 판정패했다. 상대의 실력이 좋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날 내 상대가 신인왕 우승을 차지했단다) 판정 결과가 나온 뒤, 링에서 내려왔다. 관장은 “형님, 조금 만 더 압박했으면 진짜 이길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나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시합 전날의 걱정과는 달리 후련했다. 30년을 미뤄둔 숙제를 드디어 끝낸 기분이었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시합이 끝난 뒤 내게 찾아왔던 감정은 단순한 기분 좋음이 아니었다. 표현하기 힘든 벅차오르는 어떤 감정이었다.


 물론 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프로복싱 데뷔한 게 뭐 대수라고, 게다가  판정패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밀린 숙제를 끝냈다는 후련함,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과는 조금 다른 어떤 감정이 벅차올랐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감정은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다. 시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자기부정의 흔적

내게는 오래된 자기부정의 흔적이 있다. 링에 올라설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합리적인 변명을 찾았다. “지금은 일단 대학을 가야할 시기야!” “지금은 취업해야할 시기잖아!” 나는 그렇게 꿈에서 도망쳤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했고, 괜찮은 회사에 취업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이다. 꿈에서 도망친 대가로 나는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던 내 깊은 내면에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게 되었다. “넌 결국 실전이 두려워 도망치는 비겁하고 용기 없는 놈이야!”라는 자기 불신.


 삶의 한계점에 설 때면 내면에서 스물 스물 올라오는 목소리가 있다. “네까짓 게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그 목소리에 압도되어 한 발을 내딛지 못하고 한계점에 얼마나 뒷걸음질을 쳤던가. 내게 남은 자기부정은 꿈에서 도망친 대가로 들러붙은 자기불신의 흔적 때문이었다. 알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실전이 무서워 도망친 바로 그 순간, 자기부정은 시작된 게다. 또 알고 있었다. 복서라는 꿈을 우회하고선 지 지겨운 자기부정을 끝낼 수 없다는 사실을.



굿바이! 자기부정


알겠다. 시합을 끝내고 내게 벅차올랐던 그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복받침이었다. 왜 안 그랬을까? 그 자기부정 때문에 얼마나 긴 시간 괴로웠던가? 무엇을 하든 내밀한 내면 어느 곳에서 들려오는 ‘네 까짓 게 그걸 할 수 있다고?’ 목소리에 얼마나 짓눌렸던가. 한참을 치고받고 링에서 내려올 때, 그 긴 시간 나를 옥죄고 괴롭혔던 그 자기부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확신했다.


 2016년 4월 16일, 프로복싱 데뷔전을 치뤘다. 판정패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긴 시간 나를 부여잡고 있던 부정적 자기인식에서 자유로워졌으니까. 더 이상 도망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꿈을 이뤘다. 아니 저주를 풀었다. 그래서 자기부정에서 벗어났다. 이제 내 앞에서 어떤 삶이 펼쳐지더라도 조금 더 당당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글쟁이로서 조금 더 당당하게 독자들 앞에서 설 수 있을 것 같다. 또 좋은 아빠로서 조금 더 당당하게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굿바이! 자기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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