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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출전전야, 서른 일곱 신인왕전에 나서며

두려웠던 건 근육질의 상대가 아니라 저주처럼 들러붙은 내 꿈이었다.

시합 하루 전, 계체

목이 마르다. 이틀 동안 거의 물을 먹지 못했다. 이제 몇 시간 뒷면 물을 마실 수 있다. 당장 내일이 시합이지만 시합에 대한 생각보다 빨리 계체(체중을 재는 것)를 끝내고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다. (프로 복싱은 시합 하루 전날 계체를 진행한다.) 차로 두어 시간 즈음 달려 계체 장소인 한 병원에 도착했다. 간단한 건강 점검을 받고 계체 장소로 갔다. 프로 복서들은 대체로 계체를 하는 장소에서 상대와 첫 대면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내가 먼저 체중을 재고 뒤이어 상대가 체중을 쟀다.  


 체중 확인이 끝난 뒤 마주서서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처음 대면했다.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우람한 근육질의 복서였다. 상대를 직접 마주하니 약간 걱정되고 긴장되었다. 그렇게 계체가 끝나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감량하느라 제대로 못 먹었던 것들을 마음껏 먹었다. 아마 복서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시합 날이 아니라 계체 날일 게다. 계체만 끝나면 이제껏 참아왔던 음식들을 잔뜩 먹으리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싸울 준비가 됐다. 그런데 걱정되고 불안하고 긴장되었다.

물도 실컷 마시고, 음식도 원 없이 먹었다. 그제 서야 제 정신이 돌아온 걸까? 이제까지는 ‘날짜 되면 시합하겠지’라는 막연한 느낌이었다면 이제 정말 실감이 났다. ‘내일이면 진짜 시합이구나!’ 계체를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관장과 함께 간 친구와 이런 저런 유쾌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내일 시합에 대한 걱정·불안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런 걱정·불안이 스물 스물 올라올 때마다 의아했다. 나는 정말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엄청 근육질이던데 긴장되지 않아?” 함께 간 친구가 물었다. 솔직히 긴장되지 않았다. 그건 내일 시합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물러날 곳도 물러 설 수도 없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싸울 준비가 되었다. 맞는 것도 두렵지 않았고, 다치는 것도 두렵지 않았고, 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상대가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걱정되고 불안했던 걸까?


 내게 프로복서라는 꿈은 저주였다. 처음 프로 데뷔하고 싶다고 말한 날 관장은 “왜 프로복서가 되려고 하세요?”라고 물었다. “복싱을 그만하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다. 관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말이었다. 서른여섯 살까지 매일 복싱에 시달리며 살았다. ‘넌 프로복서라는 꿈에서 늘 도망 다녔던 비겁한 놈이잖아!’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렸다. 운동을 접고 수능을 준비했던 시절부터, 취업을 준비했던 시절도, 정신없이 바쁜 직장생활까지 늘 그 목소리에 시달렸다.



두려웠던 건 근육질의 상대가 아니라 저주처럼 들러붙은 내 꿈이었다.


‘넌 꿈에서 도망 다닌 비겁한 놈이야!’라는 그 내면의 목소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복싱 체육관 근처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인생을 끝내고 싶었다. 그렇게 복싱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프로 복서라는 꿈을 이루면, 그 저주를 풀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복싱을 그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1년 4개월 동안 그렇게 열심히 복싱을 했던 게다. 싸울 준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걱정·불안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내일 시합 후에도 저주를 풀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일 시합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복싱 체육관 주위를 배회하는 유령으로 남으면 어쩌나하는 걱정 때문에 불안했던 것이다. 내가 두려웠던 건 근육질의 상대가 아니라 저주처럼 들러붙은 내 꿈이었다.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너무나 긴 시간을 비겁한 도망자로 살아왔다는 걸. 또 알고 있다. 그 긴 시간 자신이 비겁한 도망자라는 걸 인정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계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두려웠다. 내일 시합을 끝내고 나서도 저주 같은 그 부정적 자기인식을 떨쳐내지 못할까봐. 다시 두어 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동네 공원에 앉았다. 친구를 보내고 조금 더 혼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두려움은 점점 가라앉고 설렘이 찾아왔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설렘이 아니라 마음이 차분해지고 또 담담해지는 설렘이었다.


 내일 어떤 감정에 휩싸일지 알 수 없다. ‘난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라는 감정일 수도 있고, ‘드디어 해냈구나!’라는 감정일지도, 아니면 ‘이제 됐다. 이제껏 수고했다’라는 감정일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답은, 내일 시합이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게다. 하지만 내일 내게 찾아들 감정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났기에 차분하고 담담한 설렘이 찾아든 것일 테다. 그렇다. 나는 내일 싸울 준비가 끝났다. 저주처럼 들러붙은 그 꿈에 당당히 맞설 준비가 끝났다.


 언젠가 어떤 철학자가 ‘삶은 밀어붙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한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삶은 그냥 살면 되는 거지 뭘 밀어붙여야 한단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에 서서 오롯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하는 지점에 서보니 알겠다. 삶은 사는 게 아니라 밀어붙여야 하는 거란 걸. 그리고 자신의 한계까지 삶을 밀어붙여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두렵고 또 설레는 일인지.



밀어붙이는 삶에 대해서

한 때 삶이 설레기만 했던 적이 있다. 그건 삶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삶이 두렵기만 했던 적도 있다. 그건 삶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나니 삶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삶을 밀어붙인다는 건, 삶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삶이 얼마나 설레는 것인지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언제나 자신의 한계에 서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느낌이다.


 출전 전야,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 서 있다. 그리고 지금에야 비로소 삶을 겨우 밀어붙이며 살고 있다. 이제야 알겠다. 삶을 밀어붙이며 사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삶을 밀어붙이는 건 ‘삶은 이렇게 살아야만 해!’라는 주제 넘는 의무나 강요 같은 것이 아니다. 그건 권리다. 자신의 삶을 더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끽할 수 있는 권리.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삶을 밀어붙이며 살고 싶다. 


 출전 전야, 내일 내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이길 수 있을지 아닐지. 혹시 다치지는 않을지. 미련이 더 남지는 않을지. 삶은 닥치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하나만 분명히 하고 싶다. 두렵지만 설레고, 설레지만 두려운 유쾌한 모험들을 기꺼이 선택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삶을 밀어붙이며 살고 싶다. 그래서 한 번뿐인 삶, 최대한 만끽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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