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30. 사랑하는 이들, 두려움의 마지막 도피처

씨바, 시작했으면 끝을 보자.

복싱을 그만해야 하는 이유, 가족

몸에 이상이 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 거였을까? 부상을 당하고 가장 걱정 되었던 건 가족이었다. 아내, 아들, 딸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프로 복서라는 꿈을 이룬답시고 무리하다 혹시라도 심하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내는 얼마나 힘들까? 또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내 이기심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점점 복싱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혀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석증은 호전되었다. 어지럼증도 거의 사라졌다. 다시 훈련할 수 있었지만 체육관에 가지 않았다. 부상을 당해서 정신 차렸기 때문이었다. 복싱이라는 위험한 운동을, 그것도 프로 시합을 하겠다니. 그건 사랑하는 아내, 아들, 딸을 둔 가장이 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뒤 늦게 깨달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정신을 차리게 되어서. 체육관 가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관장에게 프로 시합에 나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건지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예전 직장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예전 직장 동료들이 나를 찾는 때는 거의 같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때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먼저 직장을 그만두었고, 직장과 퇴사에 관한 몇 권의 책도 냈기 때문일 게다 . 그는 직장을 그만둔 이후의 삶이 어떤지, 먹고 살만은 한지 등 월급쟁이들이 직장이 싫을 때하는 흔한 질문들을 물었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졌다.


“뭘 그렇게 고민 하냐? 어차피 영원히 직장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만둬도 돼. 안 죽어!”
“나도 알지. 그런데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까. 가족들 걱정이 돼서 그렇지”
“직장 나와서 네가 열심히 살면 되는 거잖아. 네가 겁나고 용기 없어서 직장 못 그만두는 거잖아. 근데 왜 가족 핑계를 대냐?”



사랑하는 이들, 두려움의 마지막 도피처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알았다.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단 걸. 그 친구에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 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고 3 때,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낸 적도 없다. 점수에 맞춰 아무관심도 없는 공대에 갔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연극영화과는 무슨, 괜한 이야기에 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려서는 안 돼!'


 대학교 4학 때, 격투기 선수가 되고 싶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운동을 했지만 결국 포기 했다. 이러저런 준비를 해서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취업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껏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을 하며 나를 키웠는데, 이제 안정적이고 돈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서 부모님 호강 시켜줘야지!” 질릴 대로 질려 버린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꾸역꾸역 다닐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아내, 아들, 딸 들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거야!"


  내 삶을 돌아보면 중요한 순간에 항상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을 했다. 그런데 그런 선택들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다. 연극영화과 대신 공대를 갔던 건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미래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였다. 격투기 선수 대신 월급쟁이가 되었던 건, 효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격투기 선수의 삶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였다.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가족들 때문이 아니라 직장을 떠나 삶을 감당할 자신도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려움의 마지막 도피처는 사랑하는 이들이다. 삶을 살다보면 두려운 선택의 순간 앞에 설 때가 있다. 그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그 두려움을 피하려고 한다. 그렇게 피해 다니는 마지막 도피처는 항상 사랑하는 이들이다. 그 도피처에서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마저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꿈을 포기하는 고 3은 얼마나 착한가? 효도를 하기 위해 대기업에 입사하는 아들은 얼마나 대견한가?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직장을 떠나지 않는 가장은 얼마나 믿음직한가?



씨바, 시작했으면 끝을 보자.


젠장, 부상으로 정신을 차린 게 아니었다. 부상으로 두려움이 커진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사랑하는 이’라는 도피처로 숨고 싶었던 것이다. 정직하게 돌아보니 알겠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프로 복서라는 꿈을 포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프로 복싱 무대에 서는 그 두려운 일을 포기할 가장 그럴듯한 그래서 누구도 설득할 수 있는 핑계를 찾은 거였다. 용기가 없어서 가족들 핑계를 대며 직장을 떠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또 다시 반복하고 있었던 거였다.


  냉정히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석증? 별거 아니다. 죽는 병도 아니고 금방 낫는다. 프로 시합? 심각하게 다칠 일 거의 없다. 나만큼 내 시합을 걱정하는 관장이 늘 하는 말이 있다. “형님이 큰 거 두 개만 맞으면 전 바로 수건 던질 거예요.” 겨우 이석증 하나 때문에 겁을 먹어서 두려움을 증폭시킨 것일 뿐이었다. 그 증폭된 두려움 때문에 다시 사랑하는 이들 핑계를 대며 도망치려고 것일 뿐이다.


  다음날 곧장 체육관으로 가서 시합 날짜를 확인하며 다짐했다. 어떤 결정, 선택 앞에 사랑하는 이들이 아른 거린다면, 그건 심각하게 쫄았다는 증거다. 너무나 두려운 어떤 결정, 선택을 피하고 싶은 심리적 조작이 시작된 거다. 나는 이제 그걸 안다. 더 이상 사랑하는 이들을 도피처로 삼고 싶지 않다. 지든 이기든 악착같이 프로 복서라는 꿈을 이루고 싶다. 또 다시 두려운 결정, 선택 앞에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다시 다짐하면 그뿐이다. “씨바, 시작했으면 끝을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29.복싱, 그만하고 싶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