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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복싱, 그만하고 싶어졌다.

방에서 고꾸라졌다.

방에서 고꾸라졌다.

새벽에 잠이 깼다. 몸이 조금 무거운 듯 느껴졌지만 별 이상은 느끼지 못했다. 물 한잔 마시려고 몸을 일으켰다. ‘어 뭐지?’라는 느낌과 함께 어지러움이 엄습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일어서서 방을 걸어나려는 순간, 천장이 빙빙 도는 느낌이 났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어, 어, 어’ 하면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술을 진탕 마셨을 때의 느낌 같기도 했고,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을 때 느낌 같기도 했다. 어지러워 균형을 잡을 수 없었고 구토를 할 것만 같았다.


  다행히 잠시 뒤에 괜찮아졌다. ‘내일이면 괜찮아 지겠지’ 하는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니 그리 믿고 싶었다. 하지만 쉬이 괜찮아지지 않았다. 고개를 갑자기 돌리거나 누웠다가 일어나면 같은 증상이 되풀이 되었다. 천장이 빙빙 도는 것 같은 어지럼증 때문에 하루 종일 구토할 것만 같았다. 어디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집필실에서 혼자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이대로 쓰러져서 정신을 잃으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을 가봐야겠고 생각했다. 어지럼증이니 뇌 아니면 귀에 문제가 있는 거라 생각했다. 뇌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단 이비인후과로 갔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는 누운 상태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의사는 ‘이석증’일 거라고 했다. 그게 어떤 병이냐고 물으니 ‘반고리관에 작은 파편이 발생해서 그 때문에 몸의 자세가 바뀔 때마다 심한 현기증이 유발되는 질환’이라고 말해주었다.



감량, 스파링, 스트레스

의사는 며칠 지켜보고 차도가 없으면 큰 병원에 가서 뇌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일단 안도했다. 내 상태가 전형적인 이석증 증상과 거의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의사에게 이석증이 왜 생기는 건지 물었다. 의사는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젊은 사람이 이석증이 발생하는 건 불규칙한 식사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도 아니면 교통사고 등으로 머리 쪽에 충격을 받게 되면 이석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진료를 받고 병원을 나오는 길에 왜 이석증이 발생했는지 알았다. 의사가 말한 세 가지 원인이 내게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량으로 인해서 불규칙한 식사를 하고 있었고, 프로 시합을 준비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또 교통사고까지는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세 번하는 강도 높은 스파링으로 머리 쪽에 반복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었던 게다. 모르긴 몰라도 그 세 가지 원인 때문에 새벽에 어지럼증으로 고꾸라졌던 것 같다.


  의사는 이석증이 치료될 때까지 과격한 운동은 물론이고,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는 것도 자제하라고 했다. 당연히 머리 쪽에 충격을 주는 일도 자제하라고 했다. 누웠다 일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구토를 할 것 같은 어지럼증이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석증은 그 어지럼증으로 인해 넘어져서 다치거나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2차 부상이 더 심각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복싱, 그만하고 싶어졌다.

체육관으로 갔다. 시합이 잡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관장에게 부상에 대해서 이야기해야만 했다. 부상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지럼증 없어질 때까지는 당분간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네, 아직 시합 때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경과를 한 번 지켜봐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관장에게는 당분간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솔직한 속마음은 ‘복싱,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기로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운전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운전 중에 어지럼증이 찾아오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되었다. 이대로 계속 무리하면 정말 더 큰 부상이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막상 시합 날짜가 잡히고 다가올수록 프로 시합을 하다가 큰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계속 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부상 때문에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복싱, 그게 뭐라고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는 급기야 복싱이 그만하고 싶어졌다. 복싱을 좋아하는 마음, 더 늦기 전에 프로복서라는 꿈을 이루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은 점점 사라져갔다. 부상 때문에 체육관에 가지 못했던 시간 동안 내 속에는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복싱, 그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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