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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꿈을 이룬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시합, 그 이후의 이야기

꿈을 이룬다는 것

시합이 끝났다. 다음 날 눈을 떴다. 안 아픈 데가 없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인대를 다쳤는지 주먹은 쥐어지지도 않고, 눈에는 피멍이 들었고, 눈동자 실핏줄이 터졌다. 안 아픈 데가 없어서 한 없이 무거운 몸과는 달리 마음만은 한 없이 홀가분하고 가벼웠다. 나는 분명 더 강건해졌고, 더 유쾌해졌다. 시합이 끝난 뒤의 기분은 졸업식을 한 기분이랄까? 인생에서 중요한 관문을 하나 지나올 때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복서의 삶에서 글쟁이의 삶으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부상과 상처가 아물어 갈 즈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을 이룬다는 건 뭘까? 그건 어떤 의미일까? 뿌듯함, 성취감, 홀가분함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정적 자아와 결별하고 더 강건해져 유쾌한 삶을 수 있게 되는 걸 의미하는 걸까? 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분명 꿈을 이루고 뿌듯함, 성취감, 홀가분함, 부정적 자아와 결별, 강건함, 유쾌함 그 모든 것들을 맛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합을 끝내 시간이 흐른 뒤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어떤 철학자가 그런 말을 했다. ‘삶을 잘 산다는 건, 하나의 삶을 종결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하나의 삶을 종결짓는다는 말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말도 납득할 수 없었다. 죽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삶을 종결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단 말인가. 하지만 하나의 꿈을 이룬 지금 그때 철학자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것도 같다.


꿈을 이룬다는 건, 발버둥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꿈을 부정하고 은폐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상황과 처지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은 이뤄야 한다. 자신의 삶에 불만족스러운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불만족스러운 삶을 종결짓는 유일한 방법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놓았던 꿈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드러내지 않았던 하지만 내밀한 어딘가에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그 꿈을 꺼내놓지 못한다면 지금 불행한 삶은 계속된다.


 불행한 삶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네들은 대체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불행한 삶 속에 머무른다. 불행한 월급쟁이의 삶에서 창업자의 삶을 원했던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내년에는 이놈의 직장 그만두고 창업한다.”라는 말을 6년 째 반복하고 있다. 그는 왜 월급쟁이의 삶을 종결짓지 못했을까? 소망했던 하지만 현실적 조건 때문에 녹록치 않았던 꿈을 이룬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그가 그토록 소망했던 영화감독의 꿈을 이뤄보았다면 지금 그의 삶은 어땠을까?


 꿈을 이룬다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영화감독이 꿈이었다면, 작은 단편영화를 한편 만들어보면 된다. 그 과정에서 그 꿈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고, 그 꿈을 좇아 더 훌륭한 영화감독이 될 수도 있다. 그건 단편영화라는 꿈을 이룬 자신만이 안다. 중요한 건 꿈에 다가서려고 발버둥을 쳐보는 것이다. 꿈을 이룬다는 건, 어쩌면 성취가 아니라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꿈을 이루겠다는 발버둥. 그 발버둥의 경험은 불행한 삶을 종결지을 수 있을 수 있는 내적 능력을 준다.




꿈을 이루면, 하나의 삶을 종결짓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프로복싱데뷔를 했지만, 나는 유능한 복서도 되지 못했고, 성공한 복서도 아니다. 앞으로 복서로 살고 싶다는 마음도 없다. 해보니 알겠다. 하지만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아니 그건 욕망이라기보다 확신에 가깝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꿈을 이루고 하나의 삶을 종결지었다. 나를 부정하고 불신했던 그 삶을 종결지었다. 그러고 나니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찾아들었다.


 꿈을 이루면, 하나의 삶을 종결지을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얻게 된다. 꿈을 이룬 뒤, 찾아오는 뿌듯함, 성취감, 홀가분함, 부정적 자아와 결별, 강건함, 유쾌함이란 감정은 덤일지도 모르겠다. 꿈을 이뤄서 정말 좋은 건, 이제까지의 삶과 의연히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얻게 된다는 걸게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을 잘 산다는 건, 하나의 삶을 종결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스치듯 지나갔던 철학자의 말을 이제 알겠다.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니 알겠다. 링 위에 올라서기 전의 ‘나’와 다시 링 아래로 내려 온 후의 ‘나’는 분명 다른 ‘나’다. 꿈을 이뤄 하나의 삶을 종결짓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꿈은 이뤄도 그만 안 이뤄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인생에 한번은 필요하다면, 자신의 전부를 걸고 반드시 이뤄 내야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냐고? 꿈을 이뤘을 때, 알게 될 게다. 하나의 삶을 종결짓는 것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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