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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은 어떻게 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까?

피해의식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차단이다


피해의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존재하기에 그냥 있는 걸, 나쁘다고 여기는 건 위험하다. 인간 자체를 부정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식욕, 성욕 등)을 나쁜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찌 될까? 십중팔구는 자신을 부정하게 될 게다. 자신이 자신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도 없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이 더 생긴다. 피해의식이 나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그냥 껴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피해의식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피해의식은 한 사람을 불행으로 몰아넣게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피해의식의 효과적인 측면에서 그것은 나쁘다. 세상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나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피해의식은 자신감이나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때문에 나쁜 거야”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피상적인 이야기이긴 하다.


 자존감이나 자신감의 하락은 피해의식의 부차적인 문제다. 피해의식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차단이다. 생각해보라. 한참 연애에 관한 설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어제 남자친구에게 절망적이게 차인 한 친구가, “연애는 무슨 연애야. 그런 거 쓸모없는 거야! 다 자기 욕심 채우려는 거야!”라고 말했다면, 그 분위기가 어떻게 될까? 십중팔구 분위기는 싸해지고 대화는 파토 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든 소위 피해의식 ‘쩌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직감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과도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피해의식 언저리를 조금만 건드려도 흥분해서 발끈하는 사람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대화 자체가 안 된다. 피해의식 자체가 한 사람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깎아 내린다기보다, 피해의식 때문에 누군가와 진정어린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깎여나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삶의 진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자존감과 자신감이란 것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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