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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들'

명예, 권력, 자아실현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두 번 물을 것도 없이 단연 ‘돈’이다. 정말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이든지 아니면 지금 보다는 조금 더 윤택하게 살기 위해서든지 그것도 아니면 돈을 정말 많이 벌어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는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싶어서다. 서글프게도 ‘돈’ 바로 이것이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오직 이 ‘돈’ 때문에 고되고 때로는 치사스럽기까지 한 그 일이라는 것을 계속 하는 것일까?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삶이,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리 단순하고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이라면,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들’은 무엇인걸까?      


1. 명예     


직장을 다니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J 차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팀장으로 근무한지 3여년 쯤 될 때였다. 인사팀은 유능한 그에게 혹할 만한 제안을 했다. J 차장에게 계열사 중 근무조건도 좋고, 급여도 더 좋은 계열사로 옮길 수 있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 계열사는 기회만 된다면 모든 그룹사 직원들이 옮겨가고 싶어 할 정도로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회사였다. 일단 다른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돈은 확실히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J 차장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앞서 말했듯이 돈이 우리가 일하는 유일한 이유라면 이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J 차장이 회사를 옮기지 않는 이유는 이랬다. 계열사로 옮겨 가면 팀장 자리를 내려놓고 팀원으로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던 것이었다. J 차장은 그것이 마뜩치 않았던 게다. 그는 한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명함에 이 ‘팀장’이란 두 글자 박을려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아무리 좋은 데로 간다고 해도 다시 팀원으로 갈 수는 없지” 그렇다. J 차장에게는 돈보다 명예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급여라는 ‘돈’보다 팀장이라는 ‘명예’가 그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비단 직장인들만 이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찰관이나 소방관, 군인 같은 직업은 여전히 박봉이다. 하는 일에 비해 턱없이 적은 돈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그 박봉에도 불구하고 때로 목숨마저 걸면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낸다. 이것 역시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가 돈이라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왜 그 고되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일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그런 걸까?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게다.


 하지만 경찰관, 소방관, 군인을 실제로 만나보면 그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많은 경찰관, 소방관, 군인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일한다. 돈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그러니까 자신이 아주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명예 때문에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견뎌 내는 것이다. 그 명예가 그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부심이기에 그 박봉에, 그 위험에, 그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돈보다 명예 때문에 일하기도 한다.

     

2. 권력     

돈, 명예 외에 우리가 일을 하는 다른 이유는 없을까? 있다. TV에서 흔히 보는 국회의원을 생각해보자.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 아주 부유한 친구가 살았다. 집도 으리으리하고 그 친구 집에 가면 한 번도 보지 못한 희한한 장난감이 즐비했다. 그런 그 친구 집이 졸지에 주저 앉아버렸다. 이유인즉슨 그 친구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두 번 낙선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좀 커서야 알았다. 국회의원 출마를 하는데 엄청난 돈이 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경우도 앞서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가 돈이라면 전혀 설명이 안 된다.      


 어쨌든 국회의원도 직업 아닌가? 일을 하고 그 일을 한 대가로 돈을 버는 그런 직업 말이다. 물론 그 일이라는 것이 공적인 영역을 대하는 것이라는 특이점은 있지만, 분명 국회위원도 하나의 직업이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국회의원에 낙선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가지려다가 돈을 벌기는커녕 집이 풍비박산 난 것 아닌가? 조금 비약해서 말하자면, 취업준비를 하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을 가지려다 돈을 벌기는커녕 그나마 있는 돈도 다 써버리게 되는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선출직 공무원을 하다가 한 번 낙선하고 다음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의 측근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 측근은 사석에서 그 당선자에게 “요즘 얼굴이 너무 좋아 보이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넸단다. 그러자 그는 “너도 한 번 해봐. 그럼 알 거야. 당선되고 나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은데 어찌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있냐? 일단 주변 사람들 인사하는 각도가 틀려져!” 


 아, 알겠다. 우리가 일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말이다. 그것은 권력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돈이 아니라 권력욕 때문에 일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선출직 공무원, 그러니까 시의원, 국회의원, 대통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부장이 되면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임원 승진을 노린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 중 임원이 되면 오직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임원이 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을 바라겠지만, 그것이 임원 승진을 간절히 원하는 근본적이고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그들이 임원이 되려는 이유는 사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싶어서다. 눈치 볼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줄이고, 조금 더 많은 사람 위에서 군림하고 싶다는 권력욕이라는 그 원초적인 욕망 때문에 직장인들은 악착같이 임원이 되려는 것이다. 기업에서 부장과 임원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그 당선자의 말처럼 직원들이 인사하는 각도가 벌써 달라지니까 말이다. 이처럼 어떤 사람은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이 아니라 권력인 경우도 있다.     


3. 자아실현     


돈, 명예, 권력은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가 이것뿐일까? 이제 내 이야기를 해보자. 돈, 명예, 권력은 지금 내가 하는 일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한 때 나름 잘나가던 대기업 직원이었다. 주변에서 인정도 받았고, 해외 방방곡곡 안 가본 곳 없이 출장을 다니며 일도 원 없이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그만두고 글쓰고 강연을 하며 살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직장이 주는 안정적인 급여도 포기했고, 대기업 직원이라는 명예라면 명예라고 할 수 있는 것도 포기했다. 게다가 직장에서 그럭저럭 인정도 받고 있었으니, 그냥 계속 직장을 다녔으면 승진을 해서 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권력마저 포기한 셈이다.


 나는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을까? 고민은 많았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나’이고 싶었다. 돈, 명예, 권력보다 생겨 먹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고 싶었다. 뭐, 아주 진부하고 식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도 나를 표현하고 싶었고, 또 일을 하지 않을 때도 내 스타일대로 살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직장을 그만 둔 것이다.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스타일대로 하며 살고 싶어서. 적어도 나에게는 자아실현이라는 가치가 돈, 명예, 권력이라는 가치보다 더 중요했다.      


 세상을 둘러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다.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중에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실제로도 그들은 대체로 돈을 잘 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진정한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그림을 그리는,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돈, 명예, 권력 보다 자신을 자신답게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일이 더 중요한 이유인 부류다. 셈이다. 이런 부류에게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자아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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