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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사랑',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

'자아실현의 욕망', '사랑받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서  


분명 돈, 명예, 권력, 자아실현은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들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 피상적인 이유다. 돈, 명예, 권력, 자아실현도 아니라면, 우리는 대체 무엇 때문에 치사스럽고 고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정확히 우리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와 같을 게다. 그러니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우리는 왜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본질적인 그래서 내밀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찾아가보자.     

1. 우리는 명예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

돈이 아니라 명예 때문에 일을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건 어쩌면 허영일지도 모른다. 앞서 이야기했던 J 차장의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그는 팀장이라는 명예를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더 좋은 근무여건과 더 좋은 급여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명예로운 자신의 자리를 지킨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말 명예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지킨 것일까? 아닐 게다. 그는 명예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지.


 J 차장은 유능한 팀장이라고 인정받는다. 상사는 물론이고 부하직원들까지 그를 유능한 팀장이라고 추켜 세워준다. 그는 지금 팀장이라는 자리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사랑을 직감했기에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팀장이라는 명예는 껍데기고 그 이면에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이다. J 차장이 팀장이라는 자리에 연연했던 이유는 사랑받기 위해서다.      


  명예를 원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다. 분명한 사실이다. ‘팀장’이라는 책상 위 명패는 자신이 동료들에게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란 것을 증명해주는 표식이다. 그래서 그 명패를 지키려 한 것이다. 그는 팀장이라는 명예를 내려놓고 다른 회사 팀원으로 가게 되면, 상사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부하직원들의 존경어린 눈빛이 담긴 인사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게다. 바로 그 때문에 객관적으로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자리에 머물려고 한 것이다. 


 경찰관, 소방관, 군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박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에 헌신하는 이유 고결한 소명을 다하고 있다는 명예 때문이 아니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약, 경찰관, 소방관, 군인이 사회에서 존경받거나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라면 어떨까? 경찰관이나 소방관, 군인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나라에서 누가 박봉을 받으며 그 고되고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할까? 그들이 박봉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없거나 혹은 적게 갖는 이유는 불특정 다수가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2. 우리는 권력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     


인간은 참 겹겹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국회의원, 임원이 되려는 사람 중 누구도 ‘권력을 갖고 싶다’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 안다. 그들이 결국 원하는 것은 권력이라는 것을. 그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더 나아가 누구라도 자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싶은 게다. 그래서 국회의원, 임원이 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또 다른 가면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이나 대기업 임원이 되려고 악착같이 애를 쓰는 본질적인 이유는 권력욕 때문이 아니다.      


 훌륭한 품성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애정결핍’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자연히 권력을 갖는다. 그런데 그 권력이란 게 뭘까? 세상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는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자신의 좋은 점만 칭찬해주고, 자신을 한 없이 배려해주는 그런 것 아닌가? 연인이 우리에게 그렇게 대해주듯, 불특정 다수가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권력욕의 본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애를 쓰니까 말이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권력만큼 확실하고 매혹적인 수단도 없다. 속으로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겉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분명 자신을 사랑해주는 척이라도 할 테니까 말이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려고 갖은 애를 쓰는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대체로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하다는 것이다. 아내(혹은 남편)와 함께 여행을 간 적은 고사하고, 서로 오붓하게 마주 앉아 서로의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다. 또 자녀들과는 대화를 한 적이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 자녀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도 어색한 사이가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은 임원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직감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은 이제 직장뿐이라는 걸. 그들은 집에서는 외롭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주말에도 자신은 소외된 것 같아 외롭고 헛헛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다음 날 직장에 오면 활기가 넘친다. 당연하다. 부하직원인 대리, 과장, 부장은 모두 자신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안부를 묻고 온갖 관심을 보여주니까. 그때 임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또 무의식적으로 직감하는 것이다. 승진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조금 더 많은 권력을 가질 수만 있다면, 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더 확실히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권력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서 일할 뿐이다.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은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 두려워서이다. 권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지금 보다 더 많이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정확히 이런 권력의 맥락에서 우리가 왜 돈을 벌고 싶어 하는지도 읽어낼 수 있다. 어느 정도 먹고 살 정도의 돈이 있거나 혹은 그 정도의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도 언제나 돈, 돈, 돈 거리며 돈을 더 벌려고 안달인 세상이다.


 어쩌면 우리가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돈이 주는 편리함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돈이라는 하나의 권력을 얻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야 말로 가장 확실한 권력의 상징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직장인, 사업가, 정치인 전부 마찬가지다. 다들 친구, 가족, 혹은 주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3. 우리는 자아실현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


나는 자아실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로 살고 싶어서 돈, 명예, 권력을 일정 정도 포기했다. 자아실현이라는 가치는 돈, 명예, 권력이라는 가치보다 좀 더 고결하고 다른 걸까? 아니다. 자아실현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앞서 돈, 명예, 권력이 사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아실현도 마찬가지다. 결국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일 뿐이다.


 지금 나는 일을 통해 나름 자아실현을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정직하게 돌아보면 내가 자아실현을 하고 싶었던 이유 역시 정확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물론 직장인이었을 때와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직장인이었을 때는 내가 아닌 모습으로 꾸며서 상사와 사장에게 사랑받고자 했던 것이고,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자 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자아실현이라는 것에도 그 내밀하고 깊은 곳에는 결국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한 때 돈, 권력, 명예를 위해서 일하는 것에 대해 천박한 것으로 생각했던 반면 자아실현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고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돌아보니 알겠다. 일을 하면서 돈, 명예, 권력을 바라는 것과 자아실현을 바라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돈, 명예, 권력보다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이 더 고상하다거나 더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라는 점에서 정확히 같다.


 많은 예술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예술가들의 절절한 고뇌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고뇌는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된다. 그들이 좌절할 때는, 누구도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될 때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내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 아파한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의 고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작품을 조각하는 조각가의 고뇌는 모두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글픔일 것이다. 

일을 그만 둘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 , ‘사랑’     


어떤이 돈, 명예, 권력 때문에, 또 어떤 이는 자아실현 때문에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 오해다. 돈·명예·권력·자아실현은 ‘사랑받고 싶다’는 본질적 욕망이 피상적으로 발현된 하나의 양태들일 뿐이다. 우리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니까.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일한다. 마찬가지로 고되고 치사스런 직장에 사표를 내던지지 못하는 건, 사랑받지 못할 존재가 될 것이 두려워서다. 


 나는 이것을 절절히 경험한 적이 있다. 직장을 그만 둘 때, 나를 마지막까지 힘들게 했던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자아실현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친구, 부모, 아내까지 대기업 직원인 ‘황진규’는 사랑해주고 있지만, 백수인 ‘황진규’는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매일 같이 시달렸다. 그 때문에 몇 년간 사표 문턱 에서 수도 없이 돌아서야만 했다. 세상 사람들은 일이 돈, 명예, 권력, 자아실현에 결부된 것이라 믿고 있지만, 이것은 오해다. 일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깊이 연루되어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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