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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나는 어떻게 살고 사랑할까?

자연 생태계의 파괴가 극심합니다. 룩셈부르크 국립자연사박물관 등 소속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이 200만 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200만 종보다 더 빠르게 멸종하고 있는 종이 있습니다. 


멸종 동물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집니다. 함 도와주세요.


 ‘전업 작가’라는 종입니다.  출판 생태계에서 ‘전업 작가’는 점점 사라져 현재, 멸종 직전에 임박했습니다. 제가 바로 그 드물다는 멸종 직전의 '전업 작가'입니다. ('철학흥신소'로 오시면 멸종 동물 무료 관람 가능합니다.) 멸종 위기의 생명을 구해 생태계를 보호해주세요. ‘전업 작가’ 번식에 힘 써주세요. 도와주시면 열심히 써서 좋은 책으로 번식하겠습니다. 


추신) 굳이 안읽으셔도 됩니다. 안읽고 사기만 해도 번식됩니다.  

이하 프롤로그




철학은 삶의 BGM이다.     


1.

“별일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리 놀라?” 

“방에 아무도 없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책이 떨어지니까 뭔가 있는 것 같아서”      


 적막이 흐를 정도로 조용한 방이었습니다. 한 친구와 저는 각자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책장에서 책 한 권이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다시 책을 읽으려 할 때, 친구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 이거 왜 이래?”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던 작은 소리에 친구는 왜 그리 놀랐던 것인지 말입니다.     


 친구는 귀신이나 영혼 같은 미신과 관련된 사례를 잔뜩 늘어놓으며 자신이 놀랐던 이유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 순간 웃음이 났습니다. 짧은 웃음 뒤로, 이 사소한 사건은 작은 웃음으로 넘겨버릴 만큼 사소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은 철학책을 펼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철학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종종 ‘철학’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너의 철학은 뭐야?” “그건 내 철학과 안 맞아” 이런 일상적인 말들은 어떤 의미일까요? “너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니?” “그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는 안 맞아”라는 의미입니다. 즉, ‘철학’이라는 단어는 ‘세계관’, 즉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철학자들이 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철학자들에게 철학은 일종의 ‘안경’입니다. 안경을 썼을 때만 세상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안경이 없다면 세상은 모두 흐릿하게 보이죠. 또한 안경의 색깔에 따라, 동일한 대상이라더라도, 붉게 보이기도 푸르게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전혀 보이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철학자들은 그가 쓰고 있는 안경(철학)에 따라 세계는 분명하고 명료한 차이를 보인다고 말합니다. ‘철학’은 그런 ‘안경’입니다. 

     

 친구와 저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안경’의 차이였을까요? 그런 것도 같습니다. 저는 긴 시간 철학을 공부하며 논리·이성·합리적인 ‘안경’을 쓰고 있었고, 친구에게는 그런 ‘안경’이 없었으니까요. 이것이 조용한 방에서 책이 떨어질 때 그것이 제게는 우연으로 보였고, 친구에게는 귀신으로 보였던 이유였을 겁니다. 이것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일까요? 즉, 세상을 더욱 분명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 역시 철학을 ‘안경’이라고 여기며 공부해왔습니다. 세상을 조금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안경’을 쓰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저는 철학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철학을 ‘안경’으로 이해했기에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친구의 말에 저는 왜 웃음이 났던 것일까요? 은밀한 교만 때문이었을 겁니다. “나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는데, 너는 ’안경‘이 없어서(혹은 잘못된 안경을 써서)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구나” 이런 은밀한 지적 우월감 때문에 웃음이 났던 겁니다.


 철학은 분명 세상을 조금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철학이 그런 ’안경‘이라면, 그 안경은 ‘돋보기’ 안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곳만 과대하게 확대해서 정작 보아야 할 곳은 흐릿하게 만들어버리는 ‘돋보기’ 안경 말입니다. 저는 철학을 공부해서 책이 떨어진 것이 귀신 때문이 아니라 우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보아야 했던 것은 ‘책이 떨어진 것은 우연’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책이 떨어지는 사소한 일에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친구의 ‘마음’이었습니다. 철학을 ‘안경’으로 여겼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없었던 셈입니다. 철학은 세상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철학의 공부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철학은 왜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요?      


2.

 철학은 ‘BGM’(background music)입니다. 이어폰을 끼고 버스를 타본 적이 있나요? 매일 다녔던 길과 정류장이지만,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선율에 맞춰 권태로운 일상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뀌곤 합니다. 영화 속 같은 장면이라도, 그 장면에 깔리는 음악에 따라 그 장면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철학을 직업으로 삼고 공부해온 지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철학은 ‘안경’이 아니라는 ‘BGM’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안경’이 아니라 ‘음악’을 갖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삶의 배경음악 말입니다. 한 명의 철학자를, 하나의 철학적 개념을 알게 되는 것은, 내 삶에 하나의 음을 더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한 명씩, 하나씩 더해진 음들이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룰 때 그것이 우리네 삶의 ‘BGM’이 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우리네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BGM’ 말입니다.     

 

 책이 떨어졌을 때, 친구가 불안과 공포를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삶에 깔리는 음악이 삶을 경직시키고 긴장시키는 ‘BGM’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삶에 깔리는 음악이 여유롭고 차분하며 평온한 ‘BGM’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철학은 세계를 명료하게 볼 수 있는 ‘안경’이 아니라, 삶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꿀 수 있는 ‘BGM’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일 겁니다.  

   

 이별, 가난, 이혼, 퇴사, 질병, 죽음… ‘갑자기 떨어진 책’처럼 우리네 삶에도 이런 사건들이 종종 찾아올 겁니다. 그때 우리는 항상 혼란·불안·우울·공포에 빠지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혼란·불안·우울·공포가 될지 아니면 흥미로운 일이나 의미 있는 일이 될지는 그의 삶에 깔리는 ‘BGM’에 의해 결정될 겁니다. 서재에 흐르는 음악에 따라 ‘갑자기 떨어진 책’은 ‘귀신’이 될 수도 있고, ‘우연’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새로운 사유를 촉발하는 ‘인연’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직장에서 힘겹게 하루는 버틴 날, 이별한 날, 해고당한 날, 몸이 아픈 날, 사랑하는 이가 죽은 날, 우리는 슬픔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 슬픔이 곧 불행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운한 사건을 맞이했지만 불행하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들은 유쾌하고 기쁜 삶의 ‘BGM’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슬픔이 불행이 될지 또 다른 삶의 의미가 될지는 한 사람의 삶에 늘 흐르고 있는 ‘BGM’에 달려 있습니다.

      

 이별하고,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사랑하는 이가 죽었지만, 그 삶 뒤로 잔잔하며 따뜻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것이 결코 즐거운 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조금 더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다음 날을 조금 덜 슬프게 조금 더 기쁘게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고난과 불운을 도처에서 마주해야 하는 삶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도 없을 겁니다.  

    

 철학은 삶의 ‘BGM’입니다. 우리네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BGM’. 철학은 삶을 바꿉니다. 이는 철학이 삶의 모든 곤경을 해결해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철학이 여러분이 당면한 모든 곤경을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철학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해줄 겁니다. 철학은 우리네 삶을 덜 우울하고 더 유쾌하며 덜 불행하고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BGM’이 되어줄 테니까요.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삶에서 곤경은 좌절과 절망이 아니라 의미와 희망으로 느껴질 테니까요.  

   

 삶이 지루한가요? 삶이 고통스러운가요? 삶에 지쳤나요? 이어폰을 낄 시간입니다. ‘철학’이라는 BGM이 흐르는 이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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