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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의 철학

밀당은 필요할까?


‘밀당’은 필요할까?

“어제 밤에 통화가 안 되더라?”

“어, 남자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

“그래서? 그 야밤에 만나러 나갔어?”

“어? 어. 나도 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미쳤어. 미쳤어. 연애 초반에 밀당 잘못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되도록 카페에서 작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쓰거나 수업 준비를 위해 가끔 카페에서 작업을 하곤 하는데, 그때 종종 주위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정신을 빼앗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연애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서른 즈음 되어 보이는 두 명의 여자들의 대화는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그렇다. ‘밀당’. 이 ‘밀당’은 연애 초반에 많이 고민하게 되는 문제다.      


 우선 ‘밀당’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보자. ‘밀당’은 ‘밀고 당기기’의 준말이다. 그러니까 연애 초반 가끔은 상대를 ‘밀어서’ 조바심을 나게 하고, 또 가끔은 상대를 ‘당겨서’ 설레게 하게 바로 ‘밀당’이다. 쉽게 말해, 상대의 애간장을 태우게 만드는 일종의 전략인 셈이다. 자, 그렇다면 이 밀당은 연애에서 정말 필요한 걸까? 밀당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자.

      

 밀당 예찬론자가 한 명이 있다. 그는 밀당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연애라는 게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야 해. 연애 초기에 너무 쉽게 보이면 좋아하는 마음이 쉽게 수그러드니까 말이야” 밀당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근거는 대체로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상대에게 쉽게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는 연애초반 콩깍지가 씌여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었다가는 자칫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기인한다. 둘째는 ‘상대의 좋아하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나에 대한 애정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하는 것이다.


밀당은, 필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 밀당은 필요 없다. 왜 그런가? 일단 기본적으로 밀당은 사랑의 정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밀당은 협상의 정서다. 협상이 무엇인가? 상대의 심리를 탐색하고 파악하여 내 것을 지키고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 전술이다. 밀당은 협상이다. 협상을 할 때 상대에게 쉽게 보이면 안 된다. 왜? 그럼 내 것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협상을 할 때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안 된다. 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은 상대는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사랑하는 관계의 정서다. 사랑이 무엇인가? 내 중심을 버리고 상대의 중심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다. 나라는 행성의 위성을 두는 게 아니라 내가 바로 누군가의 위성이 되는 것, 그게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자발적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항상 내 것을 먼저 챙기던 주인의 삶에서 상대의 것을 먼저 챙겨주는 노예가 되는 것, 그게 사랑이다. 그 사랑의 관계가 바로 연애다. 그러니 협상의 정서인 밀당은 연애에서 필요 없는 것, 아니 악착같이 기피해야 할 것이다.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게 그 사람의 노예가 되어 그 사람의 기쁨의 대상이 되기를 기꺼이 자청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할 것이 걱정되어 밀당을 하는 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상대를 만나서 하는 행동, 그게 바로 협상이다. 내 것을 지키고 내 이익을 지키고 싶다는 협상.

        

밀당 없이, 연애해야 사랑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밀당이 사랑의 감정을 지속시키려는 행동이라면 괜찮은 것 아니냐?’ 실제로 너무나 사랑했기에 밀당 없이 모든 것을 다 주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기도 한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너무나 소중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조금은 잔인하지만 단호하게 말하자. 이 경우에도 밀당은 필요 없다.


 왜 그럴까? 나는 연애를 하면서 밀당을 해본 적이 없다. 여자 친구가 보고 싶을 때는 보고 싶다고 말했고, 여자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 그녀 곁으로 달려갔던 연애를 한 적이 있다. 그 연애의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 재미없는 영화를 봤던 게 문제였을까? 영화관을 나서는 길에 그녀는 내게 “너랑 만나는 게 별로 재미가 없다.”말과 함께 이별을 통보했다. 처음에는 그녀를 원망했고, 나중에는 밀당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후회했다. ‘적절히 긴장감을 유지했으면, 그녀가 나를 재미없어 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


 돌아보니 알겠다. 밀당을 했으면 그녀를 조금 더 곁에 둘 수 있었을까? 또 그랬다면 나는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게다. 그녀는 사랑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게다. 그녀는 ‘사랑’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재미’가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밀당을 했으면 그녀에게 재미를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랬다면 나는 연인이 있지만 한 없이 외로운 그 끔찍한 경험을 지속했어야만 했을 테다. 나는 밀당을 하지 않은 덕분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을 떠나보낼 수 있었고, 동시에 사랑할 만한 사람을 찾아 떠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실수 없는 삶은 없다. 연애 역시 몇 번의 실수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밀당을 하지 않았던 것을 연애의 실수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연애의 진짜 실수는 밀당을 하는 것이다.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밀당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진짜 사랑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밀당 없이 연애하면 분명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 상처로 인해 우리는 정말 사랑할만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과 기회를 선물 받게 된다. 그래서 연애는 기꺼이 상처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허락된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밀당은 필요하다.


분명 연애에서 밀당은 필요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예외 없는 법칙이 있던가. 삶이 그리 단순하던가. 연애가 그리 단순하던가. 연애에서 분명 밀당이 필요한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은 어디일까? ‘밀당은 필요 없지만, 동시에 필요하다’는 궤변 같은 이야기를 납득시키기 위해 내 연애 이야기를 하나 더 방출해야겠다. 밀당 없이 연애하느라 상처를 받기하고 또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다사다난한 연애 뒤의 이야기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밀당은 결코 연애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하지만 나는 가끔 밀당을 했다. 한참 열애 중인 시기에 2~3일을 연락한 번 하지 않은 적도 있고, 또 어느 시기에는 통화를 해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꾹꾹 눌러 담은 적도 있다. 나는 왜 그랬을까? 그녀에게 쉽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그랬던 걸까? 그녀와 사랑을 조금 더 연장하기 위해서 그랬던 걸까? 아니다.


 2~3일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건, 그녀의 가슴 아픈 가족사로 인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가 붉어지기 시작한 시기였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픈 가족사에 관해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상처를 내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 내고 싶었다.


 한 동안 ‘만나자’는 말도 ‘보고 싶다’리는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그건, 그녀의 예전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다시 연락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와 사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며 또 나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랑은 의무가 아니니까. 그녀에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자문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보고 싶은 마음, 불안한 마음을 애써 참으며 밀당을 했던 것이다.


밀당은 필요하다. 나를 위해서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연애에서 밀당이 정당화될 때가 있다. 나를 위해서 아니라 상대를 위한 밀당만이 연애에서 정당화된다. 나는 밀당을 했다. 2~3일을 연락하지 않았고, ‘보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를 위해서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왜 나에게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야? 우리가 그 정도 사이 밖에 안 되는 거야?” 그녀를 몰아 뭍이고 싶었다. “지나간 남자는 잊는 거야. 지금은 나랑 연애하고 있잖아. 보고 싶어.”


 밀당은 필요하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상대의 감정을 섬세하게 살피고 그 사람만의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한 밀당은 필요하다. 때로는 상대를 밀어 내어 멀어지고, 또 때로는 상대를 당겨서 가까워질 수 있는 밀당이 필요하다. 그런 밀당이 없다면,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추워하는 상대를 밀어 내거나, 더워하는 상대를 끌어안게 될 테니까. 상대를 위한 밀당은 전략이라기보다 지혜에 가깝다. 전략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지혜는 상대를 위한 것이니까.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면, 밀당을 나와 가장 먼 곳에 떨쳐 두자. 나를 위한 밀당은 행복한 연애를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테니까. 상대를 보호하고 싶다면, 밀당을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두자. 상대를 위한 밀당은 성숙한 연애를 하는 데 가장 필요한 지혜로움이니까. 복잡 미묘한 그래서 하나의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이 연애다. 그래서 연애에서 밀당은 때로는 필요 없고, 때로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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