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시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출판한다는 것은 누군가 보기에 어리석고 무의미하며 무모한 일처럼 보인다는 사실을요.
철학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 보기에 어리석고 무의미하며 무모한 삶을 이어간다는 말에 다름 아닐 겁니다. '철학을 하며 산다'는 자부심으로, 그 어리석고 무의미하며 무모한 삶을 또 이어갑니다. 10여년 즈음, 철학을 처음 시작하며 썼던 책을 고치고 다듬어서 다시 출간했습니다.
참혹한 시대(윤석열 정권)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책'과 '철학'마저 없다면 이 시대는 얼마나 더 참혹해질까요? 책이 증발한 시대에, 철학이 증발한 시대에, 책과 철학이 무엇보다 지혜로우며 의미있고 씩씩한 삶의 증거임을 널리 알려주세요. 난해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안 읽어도 되니까 일단 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하 출판사 서평입니다.
변하고 싶은데 변하지 않는 삶
삶이 관성에 휩쓸리고 있다면, 필요한 건 철학이다
‘나 잘 살고 있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삶의 궤도를 바꾸어 만족스러운 삶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여행, 취미, 자기계발 등 이것저것 시도해봐도 잠깐의 기분 전환만 될 뿐, 삶은 이내 원래의 궤도로 되돌아온다. 변하고 싶은데 변하지 않는 삶에 지친다. 마음 깊은 곳에 불안과 불만족을 안고 하루하루를 쫓기듯 살아간다. 이것이 지금 우리네 삶의 민낯이다.
“삶이 관성에 휩쓸리고 있다면, 필요한 것은 앎입니다. 앎으로 기존의 삶을 잠시 멈춰 세우고 다른 삶을 구축할 틈을 열어야 합니다.” 이 책의 저자 황진규는 말한다. 저자는 한때 우울증을 앓던 직장인이었다. 숨 막히는 직장생활 중 그의 유일한 숨 쉴 틈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철학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정신 없이 돈 벌고 돈 쓰는 삶에 이리저리 휩쓸렸지만, 철학책을 읽을 때만큼은 그 삶을 잠시 멈춰 세우고 ‘나는 왜 돈을 벌고 싶은가?’ ‘나의 진짜 욕망은 무엇인가?’ ‘진정한 행복은 어떤 모습인가?’와 같은 고민들을 할 수 있었다. 삶이 단박에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쌓이고 깊어질수록, 지금과 다른 삶으로 나아갈 틈이 보였다. 어느 겨울 날, 그는 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철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삶을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 일상의 틈에 들어온 철학이 그의 삶을 바꾸어놓은 셈이다.
21명의 번뜩이는 철학자들과 함께하는
삶의 궤도를 바꾸는 철학 훈련
삶의 궤도를 바꾸고 싶다면 철학을 만나볼 시간이다. 이 책은 저자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켰던 철학자들의 사유를 담고 있다. 번뜩이는 철학자들의 힘 있는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살면 행복하겠지?’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던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가치관들에 균열이 갈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1장 ‘욕망의 훈련’에서 스피노자는 “나의 재능은 무엇일까?”라고 고민하는 우리에게, 재능은 ‘정신’이 아닌 ‘몸’에 있기에 ‘몸이 욕망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2장 ‘사랑의 훈련’에서 바디우는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 여기는 ‘서로의 반쪽을 찾아 하나가 되는 관계’나 ‘현실적 조건이 고려된 거래적 관계’는 결코 사랑이 아니라 단언하며, 사랑이란 끝끝내 ‘둘’로 존재하려는 고통스러운 기쁨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같은 말들을 남발하는 우리의 일상적 언어 습관을 문제 삼는다.
4장 ‘자유의 훈련’에서 니체는 진정한 행복이란, 사회가 정한 ‘옳고 그름’을 거부하고 자신이 정한 ‘좋고 싫음’에 따라 사는 지혜이며, “우리가 가장 심한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더없는 행복 속에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푸코는 이유 모를 짜증이나 분노, 성적 취향, 폭력성 등 우리가 흔히 ‘비정상적’이라 여기고 쉬쉬하는 부분에 오히려 우리의 인간적 진실이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들의 말은 어렵진 않아도 불편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 불편함의 정체는 우리가 오랜 시간 옳다고 믿고 있던 앎에 균열이 갈 것 같은 불안감이다. 철학자들은 자신의 생을 바쳐, 때로는 세상의 비난과 겁박을 온몸으로 받으며, 인간을 조금 더 자유롭고 기쁘게 하는 앎을 보여주려고 누구보다 애썼던 이들이다. 그들의 앎에 귀기울이기 위해서는, 우리도 조금 용기 내어 마음의 틈을 열 수 있어야 한다. 그 틈 사이로 새로운 앎이 들어올 때, 우리의 삶도 조금씩 변하게 될 것이다.
철학은 ‘앎’에 틈을 내고,
그 틈 사이로 ‘삶’은 비로소 변화한다
저자의 삶은 그렇게 변했다. 어떤 철학자의 말이 마음 속에 훅 들어올 때가 있었다. 그 말이 습관적으로 반복되었던 그의 일상에 틈을 내고 변화를 일으켰다. 스피노자가 만든 틈은, ‘난 뭘 잘하는 사람일까?’라는 고민이 들 때마다, 생각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무엇을 할 때 자신의 몸이 가장 기쁨을 느끼는지 온몸으로 찾게 만들었다. 비트겐슈타인이 만든 틈은,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라고 말하는 대신,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말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게 만들었다. 니체가 만든 틈은, 행복은 안정감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 속에 있다는, 행복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구축해주었다. 철학이 만든 틈은 그의 일상을 변화시켰고, 그 변화가 충분히 다져졌을 때 그의 삶은 비로소 다른 궤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삶 역시 그렇게 변할 수 있다.
저자는 인문 공동체 ‘철학흥신소’에서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철학책을 읽었던 것처럼, 그를 찾아온 이들도 퇴근 후 철학 수업을 들으며 각자의 삶에 틈을 내고 있다. 그들 중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오래도록 꿈꿨던 일을 용기 있게 시작한 이도 있고, 상처투성이였던 삶을 치유하고 방밖에 나와 온몸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이도 있으며, 소중한 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고 있는 이도 있다. 언젠가 어느 철학책이 저자의 삶에 낸 틈이, 그가 가르치는 이들의 삶에 다시 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변화는 그렇게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틈에서 틈으로. 저자가 삶으로 써낸 이 ‘철학책’ 역시 독자들의 앎과 삶에 작은 틈을 낼 수 있길 바란다.
<틈을 내는 철학책> 편집자 김혜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