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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 불교의 이 전언을 오랜 시간 이해하지 못했다. 자비가 불교의 중핵 아닌가? 그런데 인연을 맺지 않고 어떻게 자비를 행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만나지 않고 홀로 방 안에 있는 자가 자비를 베풀 수는 없는 법 아닌가?


며칠을 자지 못했을까? 이틀, 사흘, 나흘?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밤이면 눈을 감은 채로 있었고, 낮은 눈을 뜬 채로 있었을 뿐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빨간 불빛 하나만이 반짝였다. 깜빡이는 붉은 칼이 심장을 찌른다. 멀리 여행을 다녀와 시차 적응에 시달리는 것처럼, 멍했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래 묵은 질문은 항상 나의 주변을 따라온다. 이 빌어먹을 철학. 그리고 때가 되면 답을 가져다준다. 이 빌어먹을 철학.


“그래, 함부로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되지. 자비를 행하려면 그래야지.” ‘자비’는 ‘인연’과 ‘평온’의 중도다. 사람을 사랑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지만 동시에 그 만남 때문에 평온이 깨어져서는 안 된다. ‘인연’이 없다면 ‘자비’도 없지만, 그 ‘인연’ 때문에 ‘평온’이 깨어진다면 그때도 역시 ‘자비’는 없다. ‘자비’는 ‘인연’과 ‘평온’ 그 사이에서 균형 잡을 수 있는 이들이 행할 수 있는 마음이다.


“함부로 사랑받지 말라.” 이해되지 않았던 불교의 전언이 내 마음에서 내 언어로 다시 쓰여졌다. 함부로 받았던 사랑은 지독한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이 사랑인지 모르고 받았던 마음은 때가 되면 지독한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인연’이 ‘평온’을 해치는 순간이다. ‘자비’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던 그 전언은 “함부로 사랑받지 말라”는 말이었다.


누가 사랑받는 일을 행복한 일이라고 하는가? 되돌려 줄 수 없는 사랑은 붉은 칼이 되어 심장에 박힌다. 심장에 꽂힌 칼을 뺄 수 있을까? ‘인연’과 ‘평온’ 사이에서 균형 잡을 수 있을까? ‘인연’을 맺어 사랑받으며,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꽃 피울 수 없는 ‘인연’은 악연이 되어 ‘평온’을 해칠 것이고, 되돌려 줄 수 없는 사랑을 받을 때 붉은 칼이 다시 심장을 도려낼 것이다.


간화선. 꽃 피울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 하며,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랑을 받아야 한다. 되돌려 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은 맺지 않겠다. 받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인연을 맺겠다. 그래야 내가 숨을 쉰다. 내가 숨을 쉬어야 자비를 행할 수 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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