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언제나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을 포착해 내고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그를 가려낸다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작은 집단이라 하더라도, 가족이든 뭐든 간에. 나아가 그 사람에게 고유한 무리를 찾아내고 그가 자기 안에 가두어놓고 있는, 아마 완전히 다른 본성을 가졌을 그의 다양체를 찾아낸다는 것. 그것들을 내 것에 결합시키고 내 것들을 속으로 그것들을 관통하게 만들고 또한 그 사람의 것을 관통해 간다는 것. 천상의 혼례, 다양체들의 다양체들, 모든 사랑은 앞으로 형성될 기관 없는 몸체 위에서 탈개인화를 실행하는 것일 뿐이다. 『천 개의 고원』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너’를 이렇게 사랑하고 싶다. 군중 속에서 갈 곳 잃은 ‘너’를 찾고, 그 속에 초점 잃은 ‘너’의 눈을 가려내고 싶다. 그것이 군중이 아니라, '너'와 오랜 시간 함께 지낸 몇 명밖에 없는 곳, 그래서 '너'가 익숙해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그 곳에서 '너'를 찾아, 그곳에서 '너'를 가려내 주고 싶다.

     

 ‘너’는 갈 곳 잃어서, 초점 잃어서, '너'에게 어울리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겠지. 나는 그런 ‘너’를 위해 네게 어울리는 너만의 고유한 무리를 찾아내 주고 싶다. ‘너’의 마음속 너무 깊숙한 곳에 숨겨 두어 그것이 ‘너’의 본성인지조차 모르고 있을, 보석처럼 반짝이는 ‘너 속의 너’를 찾아내 주고 싶다.


 ‘너 속의 너’를 나의 품 안에 꼭 품고 싶다. 그렇게 ‘너 속의 너’가 나를 뚫고 지나가게 두고 싶다. 그렇게 나 역시 ‘너 속의 너’를 뚫고 지나가고 싶다. 그렇게 ‘너 속의 너’와 ‘나 속의 나’가 연결되어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수없이 다채로운 빛깔이 울려 퍼지는 더 큰 보석이 되고 싶다. 지상에 없고 천상에만 있는 보석. 보석들의 보석들. 다채로운 빛깔의 다채로운 빛깔들.   


 나의 사랑도, ‘너’의 사랑도 모두 아무런 기관도 갖지 못한 ‘애벌레’가 다채로운 빛깔의 자유로운 나비가 되듯, 나와 ‘너’를 벗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것을 '너'가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것 '너'가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더 이상 나와 '너'의 사랑이 존속할 수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를 이렇게 사랑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