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제국(愛のコリーダ, 1976) 오시마 나기사
* 오시마 나기사 : 일본의 영화감독. 대표작은 『일본의 밤과 안개, 1960』 『교사형, 1968』, 『감각의 제국, 1976』 『전장의 크리스마스, 1983』, 등이 있다.
나기사는 일본의 1960년대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주로 정치와 성을 화두로 삼는다. 그의 영화는 2차 대전 이후 청산되지 않은 제국주의의 잔재로 인해 발생하는 일본의 사회적 부조리를 다루거나, 군국주의의 왜곡된 남성성을 묘사한다.
나기사는 좌파적 성향의 감독이다. 나기사는 유년 시절, 태평양 전쟁으로 아버지가 죽고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며 범죄자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오키나와 전투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하고, 일본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감각의 제국』은 외형적으로 보자면 ‘기치’와 ‘사다’의 파격적인 러브스토리지만, 사실상 정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일본의 1930년, 즉 제국주의 전쟁의 광풍이 불어닥친 상황이다. 모든 인간은 허무를 느낀다. 하지만 그중 가장 깊은 허무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단연 전시다.
왜 죽고 죽여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삶이 이어질 때, 삶은 지독한 허무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나기사는 전쟁의 광풍 속에 ‘기치’도 ‘사다’도, 아니 그 시절 모든 이가 그런 지독한 허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로부터 『감각의 제국』을 시작한다. 지독한 섹스가 난무하는 ‘감각의 제국’은, 결국 지독한 허무로 인해 감각이 마비된 사회를 흔들어 깨우려는 나기사의 비명소리인지도 모른다.
『감각의 제국』은 ‘포르노’가 아니다. 오히려 ‘반反 포르노’에 가깝다. ‘포르노’는 무엇인가? 갖가지 방식으로 성적 욕망을 생성·증폭·왜곡시키는 것 아닌가? 우리네 사회를 보라. 거대한 포르노의 세계 아닌가?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지만) 성기만을 가린 채 온갖 금기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 천지다. 하지만 『감각의 제국』은 반대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던 노인도, ‘기치’도 ‘사다’도 (옷을 입어 몸을 가리지만) 성기만 드러낸다.
『감각의 제국』은 형식과 내용 모두 금기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금기는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욕망을 증폭하고 왜곡한다. 10대에 이 영화를 처음 보았고, 30대 후반에 다시 보았다. 10대 때에는 발기가 되었지만 30대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10대에는 성에 대한 금기가 심했기에 ‘반反 포르노’조차 ‘포르노’로 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난했던 20대를 보낸 30대에 다시 본 영화는 뭔가 슬펐다. ‘기치’와 ‘사다’가 섹스에서 성적이 흥분이 아니라 인간의 바닥에 있는 서럽고 처연한 ‘그 무엇’을, 그리고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부조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감각이 마비된 시대를 산다. 허무에 침잠된지도 모른 채 허무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고 있다. 이는 지금 우리 역시 전쟁만큼이나 참혹한 시대를 겪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소 폭력적인 방법일지라도, 우리 역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없다면, 마비된 감각이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오시마 나시가는 싸구려 포르노 감독이 아니다. 가장 내밀한(개인적) 이야기로 가장 정치적(사회적)인 이야기를 완성하는 거장 중 거장이다.
허무를 섹스로 채우려는 사랑은 ‘배아’적 사랑이다. ‘배아’적 사랑은 분열되어야 한다. ‘성숙’을 품은 ‘지혜’에 이를 때까지.
1.
‘기치’와 ‘사다’의 관계는 사랑일까? 세상 사람들을 콧방귀를 낄 테다. 왜 그런가? 둘은 불륜不倫 관계이며, 병적으로 서로의 육체만 탐닉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세상 사람들은 ‘기치’와 ‘사다’의 관계를 사랑이라 아니라고 단언할까? 둘은 금기를 넘었기 때문이다. ‘기치’와 ‘사다’는 불륜不倫과 성性이라는 금기를 넘나들며 지독한 쾌락만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불륜과 성은 대표적인 금기다. 금기는 금지를 낳고, 모든 금지된 것은 욕망을 낳는다. 그 (금지되었기에 생성·증폭·왜곡된) 욕망을 해소할 때, 발끝까지 찌릿거리는 쾌락이 온몸이 마비시킨다. 이것이 유사 이래 인간 사회에서 불륜과 성에 관한 비대한 욕망이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던 이유다.
인문학의 역사를 보라. 부모와의 섹스, 성직자와의 섹스, 배우자 이외 대상과의 섹스는 인문학의 단골 메뉴다. 불륜과 성은 금지되었기에 더 큰 욕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그 욕망을 해소할 때 더 큰 쾌락을 느낄 수밖에 없다. 누군가와 섹스하고 싶다는 집요한 욕망은 그 사람과 섹스할 수 없다(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에서 발생하는 욕망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금기를 넣을 때의 쾌락은 결코 사랑일 수 없다고 확신한다.
불륜은 사랑이 아닌가? 불륜은 더 이상 기존의 무리倫에 속하지 않는다不는 것을 의미한다. 불륜에 대한 욕망은 금기에 의해 추동된다. 기존 무리의 질서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세상 사람들이 불륜을 비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이 속한(믿는) ‘정상’적인 가정이라는 무리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때문 아닌가. 그런데 이는 얼마나 무지한 생각인가?
모든 사랑은 불륜적 속성을 가진다. 사랑은 기존 질서의 해체와 새로운 체제에 대한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어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라. 부모가 장악하고 있는 ‘정상’적인 가족(기존 질서)을 벗어나 다른 가족(새로운 체제)을 구성하는 과정 아닌가. 모든 사랑은 기존의 무리를 벗어나 자신만의 무리를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불륜에 대한 욕망은 사랑에 대한 욕망일 수 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