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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지 말아요"

연애의 철학, 프롤로그

어린아이나 젊은이의 특성은 “나는.....나는......나는.....”이라고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의 표지와 영원한 사람의 헌사는, 이 ‘나’가 ‘당신’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하는 욕구다.  키에르케고르 「사랑의 역사」     


“자신을 사랑하지 마세요!”


연애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떤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여러분들을 유혹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사랑하지 마세요!”라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사랑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운 분들도 계실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치 진리인 냥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건 아마 자신의 생각이기보다 자칭 멘토라고 불리는 몇몇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진 이야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연애와 사랑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뜨거운 연애를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상처받지 않는다.’고, ‘그래야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저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강변을 하지요. 사실일까요? 그렇습니다.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분명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과 이별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상처를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입니다. 질문을 바꿔봅시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 질문을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가능해야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성립하는 것일 테니까요. 직접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나요?”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 실제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자기불신, 낮은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지 않기에 생긴 것들입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해!’라는 이야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애초에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세상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스스로 자신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기애’, 그러니까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TV에 나오는 자신감 넘치고, 매력 넘치는 연예인들은 종종 말합니다. “중요한 건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거예요” 그리고 덧붙이지요. “스스로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누가 사랑해줄까요?”라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자기애’ 넘치는 연예인들은 자신이 매력적인,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된 이유가 먼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을 사랑해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애’, 그것은 자신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았던 만큼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며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대상이 팬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누군가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줄이고 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을 해야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줄 테니까요.



 ‘자기애’는 타인에게 사랑받음을 통해서만 형성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애’를 줄이고 타인을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타인이 우리를 사랑해주어 ‘자기애’가 형성될 테니까요. 자기애의 역설이지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저를 답답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면 할수록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까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줄이고 타인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과 연애를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나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깊은 사랑은 반드시 우리에게 되돌아 올 겁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려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쏟아 붓고, 연인을 통해 그 깊은 사랑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누구보다 ‘자기애’ 넘치는 사람이 되어있겠지요.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자신감 넘치고 매력 터지는 그 자기애 넘치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요.      


 사랑과 연애가 미움과 이별로 끝나는 경우는 일상의 흔한 풍경이지요. 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 서글픈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신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사랑과 연애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준비가 되셨나요? 그렇다면 이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과 연애에 관한 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2017년 2월, 사랑과 연애로 한 겨울 추위도 녹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신도림 스피노자, 황진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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