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라는 종교 생활

by 황진규의 철학흥신소


지금은 ‘신(종교)’이 아니라 ‘돈(자본)’의 시대다. 무신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신을 믿는다는 유신론자들마저 그 내밀한 마음속에는 ‘신’이 아니라 ‘돈’을 믿는 경우는 흔하다. 그렇다면 이제 종교 생활은 사라진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네 삶을 돌아보라. 땀 흘려 일하며 돈을 벌기보다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등등으로 돈을 벌려는 풍조가 만연하다.


우리 시대에 많은 이들은 육체노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정신노동으로 점점 가닿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궁극적으로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이다. 이것은 ‘사유’만으로 ‘존재’를 만들고 싶다는 ‘신’적 욕망과 무엇이 다를까? 자본주의는 종교적이며, 종교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적이다. 누구보다 자본주의에 대해 깊이 성찰했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벤야민은 자본주의를 이렇게 진단한다.


자본주의에서 일종의 종교를 볼 수 있다. 즉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과거에 소위 종교들이 답을 주었던 것과 동일한 걱정, 고통, 불안을 잠재우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한다.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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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자본(돈)을 교환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가? 통장에 돈이 없으면(있으면) 단순히 생활에 필요한 상품들을 살 수 없을(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통장에 돈이 없으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일들마저 걱정되고, 불안하고 그 때문에 고통받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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