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 이성 → 타자 → 자신의 발견
가장 큰 ‘사건’, 연애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많은 사건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사건 났네!’라는 말에서 느끼는 감정처럼 ‘사건’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건’이라는 것은 가치중립적이다. 실제로 교통사고만 ‘사건’인 것은 아니다. 근사한 영화를 본 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그것 역시 ‘사건’이다. 이처럼 살아가면서 만나게 많은 사건들 중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일까? 단연 연애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를 통해 우리는 미처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민한 독자라면 의아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앞서 연애는 타자의 발견이라고 말했으니까. 연애라는 것은 여자 혹은 남자라는 이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고 단독적인 한 사람, 즉 타자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이미 말했다. 그런데 몇 번의 애틋한 연애와 절절한 이별을 경험하게 되면 알게 된다. 결국 연애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건, 이성도 타자도 아니라는 걸. 놀랍게도 진심으로 사랑했던 연애 끝에 알게 되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연애를 통해 분명 타자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은 언제나 나를 발견하는 과정과 동시적이라는 사실이다. 타자를 발견한다는 건,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말과 동의어다. 왜 그럴까? 연애는 너무도 사랑하기에 내 마음대로 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면 알게 된다. 연애를 하지 않았으면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내 속에 그런 모습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연애는 사건 중에서도 대형 사건이 셈이다. 그 어떤 사건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니까 말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내 연애사로 설명하자.
연애는 타자를 통한 나의 발견이다.
나는 내가 이해심이 많고 상대를 잘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믿었다. 친구들의 웬만한 실수는 모른 체 했고, 약속 시간에 늦거나 약속을 취소해도 그러려니 이해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다지 이해심이 많은 사람도, 상대를 잘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연애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여자 친구는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한 편이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약속 시간에 늦거나 혹은 갑자기 취소를 통보해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한 동안은 여자 친구의 그런 태도를 이해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약속 시간에 늦거나 갑작스럽게 약속을 취소해버리는 날이면, 그녀에게 원색적인 화를 내고 짜증을 내었다. 그렇다. 나는 생각했던 만큼 이해심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상대를 잘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던 게다. 그녀와 연애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사실은 이기적이며 배려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란 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연애는 여지없이 숨기고 싶어 했던 내 모습을 폭로했다.
연애사 고백 하나 더. 나는 내가 남자답고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별 통보 앞에 울고불고 매달리는 남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볼 때면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믿었다. 한참 연애 중인 어느 날이었다. 잠시 보자는 이야기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여자 친구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했다. 당황스러워서였을까? 너무 놀라서였을까? 남자답고 쿨하게 ‘그러자!’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렇게도 한심하게 생각했던 영화 속 남자처럼, 여자 친구 집 앞에 찾아가 울고불고 “다시 만나면 안 될까? 내가 더 잘 할께”라며 매달렸다. 그날 알았다. 나는 전혀 남자답지도, 쿨한 사람도 아니라는 걸. 그녀와 함께했던 연애, 그리고 그녀의 일방적 이별 통보가 없었다면, 나는 한 없이 찌질하며, 유약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연애는 결코 ‘나’이지 않았으면 하는 내 모습을 폭로했다.
연애 : 이성 → 타자 → 자신의 발견
연애를 통해 궁극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건, ‘나’ 자신이다. 연애를 시작하면 분명 제일 처음 발견하게 되는 건 이성이다. 남자(여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여자(남자)가 갖고 있는 보편적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연애를 하게 되면 타자를 발견하게 된다. 단독적이고 유일한 한 사람(타자)을 발견하게 된다. 단독적이고 유일한 존재인 타자를 절절하게 사랑하면 비로소 알게 된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연애는 언제나 자신의 바닥을 여실히 드러내는 까닭이다.
적지 않은 연애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견디고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인지. 또 내 속에 있지만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무엇인지. 이건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우리는 언제나 상대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진짜 연애를 한다는 건, 발가벗고 그 사람 앞에 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 과정에 들어섰다면 당연히 자신이 누구인지 잔인하리만치 명료하고 확실하게 확인하게 될 수밖에 없다.
연애를 하면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연애를 하면 가장 먼저 이성을 발견하고, 이성의 발견 뒤에 등장하는 타자 통해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연애란 이성에서 타자로, 그리고 그 타자를 통해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짜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이 성숙해 보이는 것도 그래서 일게다.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만큼 성숙해 보이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