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자기실현성은 기본적으로 자기기만이다
말이 무서운 이유 하나 더.
말이 무서운 이유 하나 더. 말은 약속이기 때문에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말은 자기실현성이 있기에 무섭기도 하다.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해’라고 습관적으로 뱉으면, 정말 상대를 사랑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건 일종의 자기체면이다. 그래서 무섭다. 애정이 식은 연인과 부부가 얼마나 흔하던가.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보라. 상대를 사랑하는지. 십중팔구는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그건 말의 두 가지 기능이 중첩된 결과다.
‘사랑해’라고 내뱉어진 말이 의무가 되어 ‘사랑해야만 해’로 변질되어서이고, 동시에 ‘사랑해’라고 내뱉어진 말이 일종의 자기체면이 되어 상대를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서이기도 하다. 말에는 그 말을 실현하는 힘이 있다. 특히나 ‘사랑해’라는 말은 더욱 그러하다. 사랑한다고 내뱉어버리면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이미 사랑이 식은 연인이나 부부가 오히려 더 ‘사랑해’라고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식어버린 사랑을 은폐하고 자신의 감정을 기만하고 싶어서.
사랑할 때만 '사랑한다'고 말하자!
말의 자기실현성은 기본적으로 자기기만이다. ‘할 수 있다!’ 수도 없이 외치는 사람은 사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마치 자신감 있는 사람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잠시는 자신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겠으나 결국은 자신의 위치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모든 거짓말은 결국 들통 나듯이 자신에게 한 거짓말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할 때만 사랑한다고 말하자. 사랑이 식었다면 내뱉어야 할 말은 ‘사랑해’가 아니라 ‘헤어져’다. 잔인한가? 몇 번의 연애를 해보면 알게 된다. 정말 잔인한건, 사랑이 식은 상대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거란 걸. 사랑이 식었다면, 그 시작도 아름다웠듯이 그 끝도 아름답도록, ‘헤어져’라고 말하자. 아니 그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사랑해’라는 습관적인 말만은 삼켜내자. 그 자기기만으로 자신과 상대에게 얼마나 잔인한 상처를 주게 되는지, 굳이 확인하고 싶다면, 언제든 말하시라. ‘사랑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