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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는 안 될 말, ‘영원히 사랑할게’

“사랑할 때까지 사랑할게.”

연애 중 결코 해서는 안 될 말, ‘영원히 사랑할게’

 

“너를 만난 게 내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야”
“나도, 그래. 사랑해”
“영원히 사랑할게”


 조금 닭살이 돋긴 하지만, 뜨거운 연애를 하며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대화다. 한참을 연애 중인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이야기다. 닭살이 돋는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대화에는 연애 중에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 포함되어 있다. 그게 뭘까?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말이다. 왜 그 말이 연애 중에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일까? 그저 문학적인 표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적어도 그 순간만은 진심일수 있는 것 아닌가?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말은 사랑의 크기를 표현하기 위한 문학적 표현일 수도 있고, 그 순간만은 진심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연애 중에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왜 일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오해는 말자. ‘세상에 영원한 것 없어!’라는 냉정한 말로 열정적인 사랑의 언어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건 아니니까. 오히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냉정한 말로 비로소 뜨거운 연애가 가능하기에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영원한 건, 없다.



연애를 하면 누구나 로맨티스트가 된다. 내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을 것 같고, 가능하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다. ‘널 위해서 별도 달도 따다줄 수 있어’라는 유치한 말은 분명 진심이다. 하지만 그 차가운 말처럼,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사랑도 연애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연애도 식게 마련이고, 정열적인 사랑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로 변하기 마련이다. 사랑이란 게 그런 것이고, 삶이란 게 그런 것이다.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사랑의 진실, 삶의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랑과 삶의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은폐하고자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결코 이뤄지지 않을 허황된 약속을 하는 것이다.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말이, 결코 이뤄지지 않을 허황된 약속일지라도 열애 중인 그 순간을 더 달콤하고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진실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 거짓이 좋을 때도 있다. 행복을 위해 거짓을 말해야 할 때도 있고, 아는 것을 모른 체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아니다.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말은 행복을 위한 거짓말도, 행복을 위해 모른 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연애는 분명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만 때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연애는 언제 우리를 불행으로 몰아넣을까? 



연애에서 불행은 이별이 아니다. 사랑이 의무가 되었을 때다.

 

연애에 관한 가장 큰 오해가 있다. ‘사랑이 식었을 때가 불행하다’는 것이다. 이 오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도 모르겠다. ‘연애는 행복하지만 그 사랑은 곧 식을 테고, 그때 여지없이 불행해질 거야’라는 생각 때문에 연애 앞에서 주저하게 되니까. 사랑이 끝나는 것은 아픈 일이지만, 그것을 불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낮이 지나 밤이 오는 것이 불행이 아닌 것처럼, 사랑이 끝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낮의 찬란함이 너무 매혹적이었기에 밤의 적막함이 아프고 아쉬울 순 있겠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다.


 연애의 가장 큰 불행은 이별이 아니다. 사랑이 의무가 되었을 때다. ‘이제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이야기는 불행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상대의 단점이 꼴도 보기 싫지만 데이트를 해야 하고, 매일 연락해야 하는 것이 불행이다. 행복해야 할 연애가 지겨운 숙제가 되는 것이 연애의 가장 큰 불행이다. 연락을 하는 것도, 데이트를 하는 것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모두 의무가 되었을 때, 그 연애는 불행하다. 아니 끔찍하다. 사랑이 식었지만 이별하지 못해 그 사랑이 의무가 되어버렸을 때, 지독히도 불행해진다.



우리는 왜 나쁜 놈, 나쁜 년이 되기 싫어하는 걸까?

사랑이 식었다면 헤어지면 되는 것을 왜 이런 불행과 끔찍함을 감내하는 것일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일게다. 첫 번째는 이별과 동시에 발생할 삶의 공백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그 공백은 연인과 함께했던 추억과 일상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수도, 오래 만났기에 생긴 편안한 익숙함을 잃는 것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나쁜 놈, 나쁜 년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우리는 사랑이 식었다고 먼저 헤어지자고 쉽게 말하는 나쁜 놈, 나쁜 년이 되고 싶지 않다. 아니 나쁜 놈, 나쁜 년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이 식었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여기서 왜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말이 연애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말은 무서운 것이다. 말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했던 바로 그 말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그 말에 갇히기도 한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랑은 이미 식었지만, 그 ‘사랑해’라고 했던 말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갇히기도 한다.



 사랑이 식으면 헤어지면 된다. 하지만 쉽게 그러지 못한다. 상대를 배려해서라고 합리화를 하지만 진실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은 자신을 위해서다. 자신이 나쁜 놈, 나쁜 년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이 모든 사달의 근본 원인은 우리가 내뱉었던 말 때문이다.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바로 그 말. 그 말이 일종의 자신과 상대에게 한 약속이 되어 이별을 말할 수 없게 된다. 내 입으로 영원히 사랑한다고 떠들었던 상대에게 그 약속을 무참히 깨버리는 나쁜 놈과 나쁜 년이 도저히 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연애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의무감으로 하는 연애. 사랑은 이미 식었지만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는 연애는 의무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상대의 단점이 꼴도 보기 싫고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는 그 끔찍한 연애는 그리 탄생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건 상대를 질리게 해서 상대가 나쁜 놈과 나쁜 년이 되어주길 바라는 남루함의 발로는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이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착한 놈, 착한 년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랑할 때까지 사랑할게.”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연애도 사랑도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라고 말하면 된다. 찐한 연애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연애 중에 그런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는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맞다. 적어도 지금 순간만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고, 상대가 나의 전부인 것 같은데 어찌 연애도 곧 끝날 거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또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나를 사랑해주는 상대에게, 이 사랑도 곧 끝날 거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진실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진실은 언제나 날카롭기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삶에서 유도리가 필요하듯, 연애에도 유도리가 필요하다. 진실이라는 칼날을 감싸둘 수 있는 칼집 같은 유도리. 다시 묻자.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할 때까지 사랑할게.”라고 말하자. 이것 역시 아픈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성숙함을 가지고 연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연애하자. 사랑할 때까지만 사랑하자. 사랑의 감정이 지속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 그리고 사랑이 식었다면, 용기를 내어 먼저 이별을 말하자. 사랑이라는 그 달콤한 감정에 도취되어 영원을 약속하는 순간, 그 지킬 수 없는 약속 때문에 사랑이 머문 자리에 의무가 들어차게 된다. 그건 자신을 위한 것도, 상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사랑이 의무로 변질될 때,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도 질식케 하니까. 사랑할 때까지만 사랑하는 것, 그게 자신을 배려하는, 상대를 배려하는 연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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