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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오르가즘을 느낀 적이 없다.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그러나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다.

남자는 오르가즘을 느낀 적이 없다.

정직하게 말하자. 섹스를 할 때 느낄 수 있는 절정의 쾌감은 분명 육체적인 문제다. 남자든 여자든. 그렇다면 생각 만해도 찌릿한 그 오르가즘은 소위 말하는 육체적인 속궁합만 잘 맞으면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사랑 없는 섹스는 안 돼!’라는 촌스러운 윤리, 도덕적 논의를 하려는 게 아니다. ‘사랑 없는 섹스도 충분히 즐거울까?’라는 논의를 해보자. 그런데 이 논의는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남자는 매번 오르가즘을 느낀다는 것이 의학적, 일반적 상식이다. 하지만 나는 이 상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체로 남자는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한다. 남자만 그것을 알고 있지 못할 뿐. 술에 취해 동물처럼 허겁지겁 여자 친구와 섹스를 하는 남자를 생각해보자. 남자는 흥분해서 발기했고 사정했다. 남자는 오르가즘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자는 오르가즘, 그러니까 섹스가 주는 최고의 즐거움을 느꼈던 것일까?


 

 급하게 볼일을 해치우는 것처럼 섹스를 하는 남자들이 있다. 이런 남자와 섹스를 하는 여자들은 기묘한 자괴감과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했지만 자신이 마치 남자 친구의 자위 기구인 것처럼 느껴지기 하기 때문이다. 섹스를 통해 오르가즘이나 즐거움을 느끼기는커녕 섹스 중에 기묘한 자괴감을, 섹스 후에는 표현할 길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중년의 어느 부인이 남편의 일방적인 섹스가 남긴 서글픔에 이리 따져 물었단다. “내가 당신 원할 때 대 주는 년이야?” 그 이야기에 한 동안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안쓰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여자만큼 남자도 불쌍한 사람이란 걸. 남자는 자신의 쾌감을 위해 일방적인 섹스를 하지만 그로 인해서 정작 진짜 오르가즘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남자도 불쌍하다. 매춘부와 섹스를 할 수 있다. 오르가즘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오르가즘은 온전한 오르가즘이 아니다.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오르가즘이란 것은 뭘까? 오르가즘은 분명 육체적인 문제이지만, 육체적이기만 한 문제는 아니다. 매춘부와 섹스를 할 때 느껴지는 쾌감을 오르가즘은 진짜 오르가즘이 아니다. 쉽게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오르가즘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논의하기 위해 잠시 우회하자. 진짜 오르가즘의 비밀은 ‘황지우’라는 시인을 통해 알 수 있다. 황지우는 자신의 시집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그러나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다.” 


 섹스를 통해 오르가즘이란 절정의 쾌감을 맛보고 싶다. 이건 분명 이기심이다. 남자들이 사랑 없는 섹스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에서조차 일방적인 섹스를 하려는 이유는 분명 이기심이다. 상대가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쾌감을 위해 상대를 성적 도구화하려는 것은 이기심 때문이다. 이기심으로 쾌감에 이를 수 있다. 말하자면 ‘이기심=자신의 쾌감’인 셈이다. 하지만 이기심으로 도달한 쾌감은 최고의 쾌감, 오르가즘이 아니다.



 왜? ‘이타심은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성적 쾌감이라는 이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이타적이 되어야 한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열정적인 섹스를 나눠 본 사람은 안다. 매춘부와의 섹스가 주는 쾌감은 반쪽짜리라는 걸. 섹스라는 것이 오묘하다. 나의 성적 판타지와 육체적 자극이 성적 흥분과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상대가 흥분하고 쾌감을 느끼는 것을 보는 것을 내가 성적으로 흥분되고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성적으로 절정의 쾌감을 느끼고 싶다면, 먼저 상대의 감정을 섬세하게 배려하고, 상대의 몸을 정성스럽게 만져주고 애무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이타적이 되어야 한다. 그건 상대를 위해서 아니다. 그렇게 이타적이 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나의 이기심(성적 쾌감)이 절정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타적이 되지 않고는 이기심을 충족할 수가 없다. 상대를 이타적으로 배려하지 않고서는 나의 이기심을 채울 수 없다. 그게 사랑과 섹스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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