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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인지부조화

연애는 운명이고, 교통사고는 불운인가?

이별이 해로워질 때

이별은 아프다. 하지만 해로운 것은 아니다. 아니 제대로 된 이별은 한 사람을 놀라울 정도로 성숙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끔 이별이 해로워질 때가 있다. 그건 이별의 모든 귀책사유를 상대에게 전가시킨 뒤 상대를 과도하게 비난할 때다. 이해도 된다. 이별의 아픔을 가장 쉽고 편안하게 넘어가는 방법이 바로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니까. 잔인한 것이 삶이라, 쉽고 편한 것은 대체로 건강에 해롭다. 패스트푸드 중 건강에 좋은 것이 어디 하나라도 있던가.


 정신건강도 마찬가지다. 이별의 모든 원인을 상대에게 돌려 옛 연인을 천하의 둘 도 없는 나쁜 놈, 나쁜 년으로 만들면 우선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그 쉽고 편한 방법을 택한 이유로 이별을 통해 성숙하기는커녕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느라 정신건강은 더 나빠져만 갈게다. 하지만 건강에 좋지 않으니 패스트푸드를 먹지 말라고 다그친다고 손이 안가던가. 쉽고 편한 것에 먼저 손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할 수 있는 건 패스트푸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패스트푸드를 먹을지 말지는 각자가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이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헤어진 연인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건 정신건강에 해로우니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비난하지 말라고 비난하지 않아지는 게 아니니까. 대신 우리가 왜 헤어진 연인을 과도하게 비난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그 이후의 결정은 각자가 하면 된다.


  

인지부조화이론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두 가지 모순되는 인지요소를 갖게 될 때 인지적 불균형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인지적 불균형 상태는 심리적으로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해소하여 심리적 안정을 찾고자 한다. 이것이 ‘인지부조화이론’의 핵심이다. 조금 어려울 수 있으니 예를 들어보자.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 A가 있다고 해보자.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올해 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새해가 밝았지만 지구는 멀쩡하다. 이때 A의 내면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교주의 예언’과 ‘멀쩡한 지구’라는 두 가지 모순되는 인지요소를 갖게 되어 인지적 불균형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A는 이미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사이비 종교에만 매달렸다. 그런 A는 ‘아, 내가 사이비 종교를 믿었구나!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사이비 종교를 더욱 광신(狂信)하게 된다.


 왜 이런 비합리적인 일이 벌어질까? 이미 사이비 종교에 모든 것을 바친 A가 자신의 인지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게 되면 그 심리적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고 심리적 안정을 되찾으려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결정을 극단적으로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곤 한다. 심지어 자신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스스로 차단하고, 알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람들의 인지부조화, 그리고 그에 따른 태도변화의 동기를 밝힌 이론이 ‘인지부조화이론’이다.



연애는 필연? 교통사고는 우연?


연애에서 이 인지부조화이론은 유용하다. 이별 후에 과도하게 연인을 비난하는 것은 바로 ‘인지부조화’ 때문이다. 연애를 하면서 어떤 인지부조화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먼저 우연과 필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하고 즐거움을 주는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자신에게 불리하고 불쾌감을 주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운이 없어서 일어난’ 우연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돌아보면 사실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만난 것을 회상하면서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라고 말하곤 한다. 반면 출근길에 난 접촉사고를 생각할 때 “어제는 참 재수 없는 날이었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된 것은 필연이고, 어제 자신을 성가시게 했던 접촉사고는 우연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랑도 그냥 일어난 것이고, 교통사고도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다.


 하지만 연애에 관해서는 '운명'이라는 매혹적인 단어를 이용해 필연이라고 믿고, 접촉사고에 대해서는 '불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우연이라고 믿고 있지 않은가? 연인에게 “우리는 그냥 우연히 만난 것일 뿐이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접촉사고 앞에서 “오늘은 사고 날 운명이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연애 역시 하나의 사건 (물론 좋은 사건이지만) 일 뿐이지만 그것을 운명이라고 포장하는 건 분명 ‘인지부조화’다. 바로 이 ‘인지부조화’가 헤어진 연인을 과도하게 비난하게 되는 원인이다.



‘나쁜 놈’과 ‘나쁜 년’의 탄생


일방적인 이별통보든 아니면 바람을 피웠든 이별의 귀책사유가 상대에게 있을 수 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연이 있다. 이별의 귀책사유가 일정정도 이상일 때, 상대는 ‘나쁜 놈’ ‘나쁜 년’이 된다. 그런데 이 ‘나쁜 놈’과 ‘나쁜 년’의 탄생은 믿음과 배신이라는 주제로 연애를 재단하게 될 때 등장한다. 믿었는데 배신을 했기에 나쁜 놈이고 나쁜 년이 되는 것이다.


 믿음과 배신에서 언제나 믿음이 먼저다. 믿지 않는 것에 배신당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 믿음은 무엇일까? 흔히 그것을 상대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니까 결코 먼저 이별을 말하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니까 절대 바람피우지 않을 거야’라고 믿는 것일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옳은 말도 아니다. 믿음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엇을 믿을까? 우리는 아는 것을 믿는다. 자동차를 믿고 탈 수 있는 이유는 자동차를 알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음식을 믿고 넣을 수 있는 이유는 냉장고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타자를 결코 믿을 수 없다. 타자는 결코 알 수 없으니까. 타자는 믿으려고 노력하는 존재일 뿐이지, 믿는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온전히 믿는다.’는 말은 대부분 유약하고 의존적인 사람들의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나쁜 년’과 ‘나쁜 놈’을 탄생시켰던 그 배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어떤 믿음에서 그 배신감이 왔을까? 그건 사랑은 필연이라는 인지부조화적 믿음에서 유래했다. 연애할 때 발생하는 믿음은 본질적으로 연인이라는 한 인격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그건 ‘사랑은 운명’이라는 인지부조화적 믿음이다.



‘운명적 사랑’이라는 환상이 남긴 믿음


일방적인 이별 통보 혹은 연인의 바람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그 배신감은 상대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운명(필연)적 사랑’이라는 환상을 믿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쉽게 말해, 긴 시간 연애를 운명적 필연이라고 믿었기에 이별이나 바람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니 그것을 정당화, 합리화하기 위해 상대가 ‘나쁜 년’, ‘나쁜 놈’ 쯤은 돼줘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애초에 만남 역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별 앞에서 상대를 과도하게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람이 나를 만난 것도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었듯, 나를 떠나가는 것도, 혹은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도 우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사랑은 필연이요 운명이라고 덧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 덧칠만큼 우리는 이별 앞에서 상대를 더 많이 비난하고 욕할 테니까.


 있는 그대로를 보자. 사랑은 사건이다. 그래서 우연이다. 이별 앞에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 삶의 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면 희망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상처만 남기고 떠나간 사람이 원망스럽고 아프겠지만, 곧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 다시 찾아올 우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본다는 것, 그건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망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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