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통보 없는 이별’ 이야기
‘통보 없는 이별’, 오래된 연인들이 이별하지 못하는 이유
이별 중 가장 덜 아픈 이별이 ‘통보 없는 이별’이다. 서로 비슷한 시기에 사랑이 끝났음을 직감하고 자연스럽게 멀어져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대체로 오래된 연인들의 경우다. 그런데 이 ‘통보 없는 이별’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서로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하지만 누구도 이별을 통보하지 못한다. 왜 일까? 섹스할 상대가 없어질 까봐? 나에게 관심 가져줄 대상이 사라질까봐?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그건 이별 자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별 앞에서 비겁하다. 사랑이 식었지만 이별을 말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심지어 사랑이 끝났음을 확신하면서도 말이다. 이별 앞의 그 비겁함은 익숙함과 안정적인 삶을 놓지 않으려는 비겁함이다. 사랑이 끝나면 추억이라는 흔적은 남는다. 사랑이 끝났다고 다짜고짜 이별을 말했던 적이 있다. 이별을 말하고 돌아오는 날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의무로서의 연애를 끝냈다는 해방감, 이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이었다.
다음 날, 헤어졌으니 미니홈피에 있는 그녀와 함께했던 사진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젠장. 방안에 혼자 앉아 내리 두 시간을 울었다. 때로 즐거웠던, 때로 다투었던 일상의 추억들이 영화처럼 눈앞에 지나갔다. 사랑이 끝난 것과 별개로 이별은 견딜 수 없이 아팠다. 그녀가 주었던 익숙함과 안정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했다. 그 이별이 너무 아팠기에 그 뒤 연애에서는 한동안 사랑이 식어도 이별을 선뜻 말하기 어려워졌다. 이별이 남기는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절절하게 경험했기에.
나의 ‘통보 없는 이별’ 이야기
시간이 흘러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했고, 모든 사랑이 그렇듯 다시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서로가 사랑이 끝났음을 직감한, 어느 토요일 오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에게서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 보자’고 연락이 왔다. 알고 있었다. 오늘이 그녀와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 카페 문을 열었다. 그녀는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하지 않고 차 한 잔을 마셨다. 차를 다 마셔 갈 때 즈음, 그녀는 내게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일어섰다.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 행복했어.”
나는 아직 여렸고, 또 어려서 그녀의 이야기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한 마디라도 했다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그녀가 떠난 자리에 한 동안 앉아서 한참을 눈물 콧물을 흘리고 나서야 겨우 카페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통보 없는 이별’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 역시 아프지 않았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아픔을 그저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통보 없는 이별’이 꽤 괜찮은 이별이었다고 생각한다. 익숙함과 안정감,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의무만이 남은, 사랑이 끝난 자리를 그보다 더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별은 아프지만, 때로는 그것을 감당할 성숙함이 필요하다. 그것이 ‘통보하는 이별’이든, ‘통보 받는 이별’이든 ‘통보 없는 이별’이든 간에. 어떤 이별도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기에 이별은 그것을 감당할 성숙함이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