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두 가지 아픔, ‘그리움’과 ‘자기연민
연애의 타잔들
연애에는 타잔들이 존재한다. 타잔이 정글을 누비는 상상해보라. 타잔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할 때 나무줄기를 잡고 신속하게 이동한다. 여기서 핵심은 잡고 있는 나무줄기를 놓는 순간 바로 다음 나무줄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나무줄기에서 다음 나무줄기로 끊임없이 갈아탄다. 나무줄기를 놓치게 되면 저 아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연애의 타잔들 역시 이런 식이다. 이번 연인과 헤어지자마자 바로 다음 연인을 잡는다. 이별의 시간은 거의 없다. 전 연인에서 다음 연인으로 끊임없이 갈아탄다.
연애의 타잔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진짜 타잔과 이유는 같다. 저 아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연애가 끝나고 다음 연애가 바로 시작되지 않으면 공허하고 외롭고 불안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건 당연하다. 그 부정적인 감정에 곤두박질쳐질 것이 두려워 연애의 타잔은 기를 쓰고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이해도 된다. 늘 옆에 있어주던 사람이 사라졌을 때 느껴지는 공허, 외로움, 불안을 견뎌내기란 만만치가 않다. 그런 면에서 이별의 공백기를 없앨 수 있는 ‘타잔 줄타기’식 연애도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별의 두 가지 아픔, ‘그리움’과 ‘자기연민’
‘타잔 줄타기’식 연애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별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이별의 고통에는 두 가지 아픔이 중첩되어 있다. 하나는 ‘타자(연인)’에 관한 아픔이다.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 떠났다는 그래서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아픔이다. 나머지 하나는 ‘자신’에 관한 아픔이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는, 그래서 누구도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이 없기에 느껴지는 아픔이다. 전자의 아픔이 ‘그리움’이라면 후자의 아픔은 ‘자기연민’이다.
연애의 타잔들은 전자의 아픔이 아니라 후자의 아픔에 매몰된 사람이다. 상대를 향한 그리움에 아파하는 사람은 결코 ‘타잔 줄타기’식 연애를 하지 못한다. 오직 그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사랑의 자리에 섣불리 누군가를 앉힐 수 없는 까닭이다. 오직 후자의 아픔, 이제 혼자가 되었다는,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없다는 ‘자기연민’에 아파하는 사람만이 ‘타잔 줄타기’식 연애를 한다. 그런 사람에게 중요한 건 타자가 아니다. 비어 있는 사랑의 자리를 채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