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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은 안 될 거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사표가 되겠다.

심상정은 당선이 안 될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재인이나 안철수를 찍지는 않을 것이다. 심상정을 지지하니까 심상정에게 표를 줄 것이다. 언제나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때로는 질 것을 알지만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 길이 좋다면, 그 길이 옳다고 믿는다면, 상처 받을 것을 알지만 그 길로 걸어야 할 때가 있다. 사死표? 되면 어떤가? 나는 사표를 방지하고 싶지 않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사표가 되겠다. 누가 사표를 쓸모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표는 쓸모없는 게 아니다. 유사 이래 역사를 보라!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사표’ 아니었던가. 버스 백인 지정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어느 흑인 여성은 결단은 ‘사표’였다. 서슬 퍼런 시절에 짱돌과 화염병을 들고 직선제를 외쳤던 어느 젊은이의 결단은 ‘사표’였다.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아?”라는 냉소를 감당해야만 했던, ‘사표’ 말이다. 내게 백인 지정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용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짱돌과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나갈 용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사표를 던질 용기는 있다.     

 

 심상정보다 더 우리 사회를 사람 냄새나는 사회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는 사회를 바꾸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을 바꾸고 싶은 사람처럼 보인다. 문재인은 그의 훌륭한 품성과 별개로 이미 구시대 인물이다. 둘 중에 누가 되더라도 세상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나마 심상정이 낫다. 그래서 나는 심상정에게 한 표를 주련다. 사표가 되면 어떤가? 때로 전략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아도 좋지 않은가. 때로 어리석음이 좋을 때도 있다. 


 질 것을 알지만 마지막까지 싸우는 사람의 어리석음에서 숭고함을 느끼는 건 정말 나뿐인 걸까? '될' 놈을 찍어주지 말고, '되어야 할' 놈을 찍어주자.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하고 싶다. 데이트할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대신. 그래서 심상정을 찍을란다. 아니, 평생을 약자를 대변하는 삶을 살아낸 사람이, 강간모의미수범보다 낮은 득표율이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자괴감만은 느끼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그 자괴감만은 피하고 싶다. 아, 씨바, 심상정.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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