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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서 머물기

너무 쉽게 불안에서 도망치려 하지 말 것.

불안만큼 사람의 영혼을 좀 먹는 것도 없다


불안만큼 사람의 영혼을 좀 먹는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많은 방법론이 있다. 그 방법론 중에 가장 쓸모 있는 방법은 ‘몰입’이다. 아무리 불안해도 무엇인가에 몰입할 때만큼은 그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독서, 음악, 영화, 게임, 사랑 등등 그 대상이 무엇이든 몰입할 수 있다면, 저주처럼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그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몰입한다는 건,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무아’無我 아닌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니까. ‘무아’의 상태이니 당연히 불안할 수도 없다. 불안은 결국 생각에서 오는 것인데, 몰입에서 무아의 상태에 들어가면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책, 영화, 음악, 게임, 사랑 등 우리를 빨아들여 몰입시키는 대상을 만날 때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음습한 늪 같은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심지어 어떤 이는 마약을 하기도 한다. 그 대상에 몰입하고 있을 때는 잠시 불안으로부터 벗어난 것 같지만 그 짧은 몰입의 시간이 끝나면 더 큰 불안이 몰려오는 경험을 다들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분명 몰입을 했는데 왜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걸까?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 때문이다.


잘 꿰어진 첫 단추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을 잊기 위해 게임에 몰입하는 사람,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불안을 잊기 위해 연애에 몰입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깊은 불안의 수렁으로 빠진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몰입하기 전에 충분히 불안해야 한다. 그 불안을 있는 그대로 껴안으며 감당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불안에서 도망치듯 어떤 대상에 몰입하면 더 큰 불안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혼자 있는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다. 다행히 그녀는 연애 중일 때는 좋았다. 항상 연인이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어디 영원한 것이 있던가. 그 연애는 끝이 났고 그녀는 홀로 남겨졌다. 동시에 깊은 불안의 수렁으로 빠졌다. 그녀는 그 불안이 너무 두려워 밤마다 클럽으로, 주말마다 소개팅 장소로 향했다. 화려한 조명과 자극적인 음악에 취할 때면 잠시 불안을 잊었고, 더 다행인 것은 소개팅에서 다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사실이다.


불안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불안을 껴안는 것이다.


그녀는 안도했다. 이제 혼자가 아니었기에,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더 불안해졌다. 분명 남자 친구를 만나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섹스도 하면서 연애에 몰입했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나는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불안에서 도망치니까 더 불안해지는 거예요” 영문을 몰라 하는 그녀에게 덧붙여 주었다. “남자 친구가 좋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 연애하는 거잖아요.”


 불안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몰입’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그냥 불안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게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불안을 감당해보는 과정 없이 무엇인가 '몰입'하는 것이 바로 ‘탐닉’이고 ‘중독’이다. 탐닉과 중독 끝에는 필연적으로 더 깊고 더 음습한 불안이 덮쳐온다. 탐닉과 중독은 불안으로 너무 쉽게 도망치려 했기에 발생한 불행이다. 그러니 너무 쉽게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말자. 


 불안한가? 그렇다면 불안하자. 그렇게 불안을 있는 그대로 감당해 나가다 보면 알게 된다. 그 불안이 의외로 별거 아니라는 것을. 바로 그때 진짜 몰입할 만한 대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드러난 몰입의 대상을 통해 지긋지긋한 불안과도 굿바이다. 몰입을 통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불안을 감당하며 발견한 대상의 몰입을 통해서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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